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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부의금(장명수 칼럼: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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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부의금(장명수 칼럼: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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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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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칼국수, 비빔밥, 설렁탕등의 일품요리를 손님맞이 식단으로 내놓기 시작한 김영삼대통령 내외는 그 식단을 계속 지키고 있다. 전직대통령들을 초대했을 때까지도 칼국수가 나왔다. 청와대 식단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다. 대통령관저에서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은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그나라 음식문화의 격조를 간직해야 할텐데, 하고한날 칼국수 설렁탕이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가서 식사를 하려면 아무래도 긴장하게 되는데, 땀을 흘리며 칼국수를 먹느라고 혼났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칼국수는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의 각오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것이 사실이다. 청와대부터 허례허식을 추방하여 검소한 살림을 하겠다는 다짐은 새정부의 출범을 맞는 국민들을 흡족하게 했다.

 그런데 1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대통령 혼자서 외롭게 칼국수를 고집하고 있는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된다. 특히 정일권씨 장례때의 부의금 모금소동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정일권씨의 장례를 치르면서 기업들로부터 부의금 1억원을 거둔것은 바로 김영삼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민자당이다.모금을 지시한것으로 알려진 김종필대표는 청와대에서 칼국수 점심을 여러번 했을텐데, 그 상징적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청와대가 손님맞이 식단을 일품요리로 줄였다면, 적어도 정부 여당은 그 정신을 지켜야 한다. 민자당은 마땅히 정부보조금 2천만원 안에서 당상임고문이던 정씨의 장례를 치렀어야 한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지나간 시대의 사회장 규모를 고집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돈이 부족하면 신문부도 아예 생략하고, 꽃차 같은것도 줄이면 된다. 국민장·사회장을 하는 사람은 일반국민들과 달리 어마어마한 의식을 치르겠다는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장례를 사회장·국민장으로 치를 정도가 되는 사람이나 그 가족들은 자기가 나라를 위해 공헌했다는 생각만 하지말고, 자신을 키워준 나라와 국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감사함이 겸손하고 소박한 장례식에서 나타나야 한다. 국민의 돈으로 장례비까지 지원해주는데, 그 돈이 부족하다고 부의금을 반강제로 모금하여 요란한 장례를 치렀다면,무엇보다 고인을 욕되게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며칠전 이기택민주당대표와 회담하던 날도 칼국수 오찬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청와대 손님상에만 칼국수가 나오면 무얼하나 라고 답답하게 바라보고 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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