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국면에 들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제조업가동률이 84%에 달해 91년 1월이후 최고치를 나타냈으며 제조업 취업자도 5만3천명이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기계수주와 건설수주액도 큰 폭으로 증가하여 생산능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인간의 생활이 짧게는 하루의 순환에서부터 일주일의 순환, 나아가서는 1년의 순환을 계속하듯이 자본주의경제도 특유의 순환을 보이면서 경제활동이 어느 정도의 규칙성을 띠고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이제 한국경제는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난 셈이다.
그 이유가 이른바 신삼저현상 때문이든 혹은 경기부양정책 때문이든 경기회복과 함께 고용이 증대되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용의 증대보다 더 반가운 경제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반가운 소식에 접하며 그저 좋아하기에는 때가 이르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에게는 산적한 문제가 많고 또 단기적 호황이 저절로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장수가 승전의 소식에서 다음번의 전투를 준비하듯 우리도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경기회복은 경제정책을 맡은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제까지 경제개혁의 주종을 이루었던 규제완화조치의 수준을 초월한 보다 본격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형평의 제고이다.
현재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등 중공업이 경기회복을 주도하나 신발, 의복, 가죽등 경공업은 생산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미 심각한 상태에 빠진 중공업과 경공업간의 불균형, 더 나아가서는 재벌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균형이 경기회복과정에서 더욱 심화될 징후를 보인다.
내가 오늘뿐 아니라 오랫동안 형평을 문제삼아 왔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문제삼으려고 하는 이유는 형평이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성장잠재력 배양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는 하나의 커다란 교환체제, 즉 「당신이 나에게 어떤 것을 해주면 나도 당신에게 무엇인가 해주겠다」는 식의 공생공존체제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재화 또는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를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에 내놓는다. 그러면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제품을 고르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기업에 지불한다. 한 마디로 기업과 노동자는 그들의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나 다른 기업과의 교환을 전제로 하는 교환관계를 맺는 셈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에 따른 우회생산도의 증가는 현대사회의 교환체제를 그물처럼 복잡하게 엮어버렸다.
이때 만일 경제사회의 구성원 각자가 최소한의 생활수준에 도달함과 동시에 구성원간에 소득이나 재산등 경제력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아서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을 압도하지 않으면 자발적 교환체제가 형성되어 창의성이 제고되고 그 결과로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닦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활수준 보장과 구성원간의 경제적 평등이라는 두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미흡하면 교환체제가 깨지거나 비록 깨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억압적 상태 또는 불안한 상태에서의 교환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이 경우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 제고와 그 결과로서의 성장잠재력 배양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최소한의 생활수준 보장과 구성원간의 경제적 평등은 개인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회 전반의 문제이므로 정부가 나서서 과감한 개혁정책을 통해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과거 정부의 성장정책의 산물이므로 더욱 그렇다.
정부는 저소득자, 예를 들면 하위 20% 소득자들이 최소한의 의식주와 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직접적인 소득보장정책을 씀과 동시에 대중소기업간, 빈부간, 농공업간등의 불균형이 현재보다는 심화되지 않도록 함은 물론 약자편에 서서 형평이 제고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정부는 일부러는 아니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써왔다. 또 상대적으로 강자를 편드는 경기규칙을 적용함에 따라 불균형이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많았다.
앞으로는 형평을 보장하는 제 조치를 실시한 이후 적자생존의 원리를 공평히 적용하여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그리고 실물기업이건 금융기업이건 예외없이 창조적 토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강자가 상대적으로 득을 보는, 예를 들면 큰 기업은 절대 도태되지 않는 경기규칙은 마땅히 고쳐져야 한다. 보다 많은 수확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의 차분한 마음으로 경기회복의 여유를 잘 이용하여 형평의 제고에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할 때이다.【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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