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비자금·비리규명 주력/일부선 사정호기잡기 분석도 농협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은 일단 한호선농협중앙회장이 불법 조성한 비자금 규모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는듯한 자세다. 그러나 한회장의 「비리」자체는 이미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봐야 할것이다. 검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을 밝혀내느냐와 무관하게 일반인들은 비리 유형이나 규모등을 상식적으로 유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한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이 어떤 명목으로든 흘러 들어 갔을 정치권에 검찰이 언제 사정의 칼을 들이 댈 것인지에 쏠려 있다. 『문제는 검찰이 국민일반의 상식적 기대와 정부의 정치적 고려사이에서 어떻게 검찰권 행사의 향방을 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검찰은 수사 배경에 대한 「의혹」이 분분해지자 『농협이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목적외에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회장의 제거나, 정치권의 제어를 노린 정치성 수사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생산적인 사정수사」라는 그럴듯한 용어마저 들고 나와 「순수성」을 강조했다.
김도언검찰총장은 『농협의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비리의혹을 내사하면서 제도적 개선방안까지 연구해 왔다』고 밝혔다.
김총장은 대전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농협의 문제점을 실감, 총장취임후 『검찰권행사로 농협이 개혁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보자』며 김태정중수부장에게 농협비리내사와 개선방안 연구를 지시했다는것이다.
실제로 대검중수부 검찰연구관 이은중검사가 농·축·수협등 생산자단체의 개혁을 주장하는 학자 및 관련단체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각종 논문등을 참조, 제도와 운영상의 개선책을 연구해 온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정중수부장은 『농협비리에 대한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개선방안도 공개,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몇 사람을 구속하고 수사를 마무리 하는 일회성 사정보다는 구조적 개선책을 제시하는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유익할것』이라며 『이번 사건 수사는 앞으로 검찰 수사가 지향해야 할 모델 케이스가 될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검찰의 이런 움직임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국가의 형벌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최고수사기관인 검찰이 농협의 구조적 개혁방안을 연구, 건의한다는것은 정부조직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격이다. 「사정」이 최고정책목표인 상황이라도 검찰의 명분론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률전문가 집단인 검찰이 엉뚱한 명분을 강변하는것은 한회장개인을 겨냥한 「표적수사」라는 시각을 비켜가려는 「위장전술」로 비치고 있다. 한회장의 개인적 비리가 많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에 대비, 제도개혁을 강조함으로써 수사의도와 성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미리 봉쇄하려는 움직임이란것이다.
그러나 한층 주목되는 분석은 『검찰은 정치권에 대한 수사확대를 촉구하는 여론이 고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여론이 떠들수록 겉으로는 곤혹스러운듯 하지만, 내심으로는 사정의 칼을 휘두를 여건조성에 유리한것으로 보고 있다는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이 수사확대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 검찰이나 정부에 결코 나쁠게 없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 검찰이 손을 대는 시기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할것으로 전망된다.【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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