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에도 햇살이 쬐는 언덕에는 파아란 풀이 움트고 있다. 차디 찬 눈 속을 뚫고 나온 봄의 전령이다. 희망은 양지쪽에서 이미 샘처럼 솟아 퍼져 나간다. 봄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닿아 마음을 녹인다. 꼭꼭 닫고 여몄던 가슴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활기를 느낀다. 새싹이 돋고 풀숲이 소생하듯 손짓과 발걸음 하나에도 싱그러움이 감돈다.
사계절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낌은 달라진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절도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받아들이는 색깔은 꽃의 가짓수처럼 다르다.
조선후기 영정조대를 살던 화가 신윤복은 봄빛이 뜰에 가득한 정경을 사람으로 표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사람이고, 남정과 여인네가 어울리는 모습은 꽃이 핀것과 다름없다는 뜻의 그림이다.
섬세한 붓 흐름이 치마 저고리와 도포는 물론 갓과 트레머리를 거치면서 생동감을 준다. 담뱃대와 바구니는 남녀의 상징이고, 정갈한 버선은 삶에 충실한 가정을 드러낸다. 얼굴 표정은 왜 그렇게 웃음을 머금게 하는지, 정녕 봄은 뜰에 가득하다. 「혜원풍속화첩」중에서, 가로 28.3㎝, 세로 35.2㎝. 간송미술관 소장.【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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