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작은 협동조합운동(박완서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작은 협동조합운동(박완서칼럼)

입력
1994.03.08 00:00
0 0

 여행을 할 때마다 목적지인 명승고적보다는 가는 길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을 적이 많다. 작은 길의 아름다움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산모롱이를 돌면 홀연히 나타나는 텃밭이 딸린 농가가 산재한 시골풍경이다.  농산물시장까지 전면적인 개방을 앞두고 앞으로 우리나라 농업이 살 길은 농업도 기업화해서 농산물값을 국제수준으로 낮추는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대형화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는 기업의 논리가 농업에도 적용될 때 산과 산 사이의 옹색한 평야에 오밀조밀 보석처럼 빛나던 농촌은 어떻게 될까. 나이 탓인지 그런 시골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때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문득문득 하게 된다.

 요즘 농산물값이 물가를 압박할 정도까지 오르자 UR타결 이후 농민의 편을 들던 소비자들도 마음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다는 위협조의 논리까지 슬그머니 대두되는 듯하다. 왜 농산물값은 좀 오르면 안되나. 폭락으로 서러움을 당할 때가 있으면 올라서 이익을 남길 때도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익을 남긴 게 농사꾼이 아니라 장사꾼일 가능성이 더 많은데, 어떻게 당장 안면을 바꾸란 말인가.

 농업을 다른 기업과 다르게 생각하고 싶은것은 단지 우리의 유구한 정서나 농협에서 선전하는 신토불이를 신봉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몸엔 우리 땅에서 나는 게 가장 좋다는것은 토종에 길들여지고 토종의 맛을 식별할 줄 아는 늙은 세대에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나이 또래에게도 토종의 맛은 추억하는 입맛의 사치일뿐, 진짜 토종은 끊임없는 품질개량에 의해서 거의 도태되었다. 다만 우리 땅에서 난것을 우리것이라고 쳐주고 식별하기에도 우리 입맛이 그동안 너무도 국제화됐고 우리 입맛을 맞추려는 외국 기업농의 연구도 만만치 않다. 기업농이 아니라도 땅이 맞닿아 있는 중국에서 난 고사리와 우리것을 맛이나 모양으로 감별하는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쉬운 방법으로 싼것은 중국산일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지만 한 발 빠른 장사꾼은 이미 수입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폭리를 취한 뒤일 수도 있다. 속여 팔기 위해서뿐 아니라 당당하게 들여온 수입농산물도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가공할  처리과정을 거친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싸고 보기 좋고 맛 좋은것을 이기는 수는 우리도 그렇게 만드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되돌아 가게 되지만, 그럼 우리나라엔 농장과 기업인만 있고 텃밭과 농사꾼은 없어질게 아닐까. 여기저기서 이 땅의 숨구멍 노릇을 해주던 농촌이 채소나 쌀공장의 공장부지가 된다고 생각할 때 숨 넘어가는 건 땅뿐이 아니다.

 같은 속도로 인간도 비인간화돼갈것같고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가 않다는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에서 좀 뒤늦었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맺어주는 어떤 협동조합에 가입했다.최소한 세 세대가 합동으로 가입해야 배달이 가능하고, 또 일주일치를 미리 신청해야 하는등 번거로움이 많고, 무엇보다도 값은 시중가보다 비싼 듯한데도 과일같은것은 아주 볼 품이 없어 내가 억지로 가입시킨 두 세대말고 더 늘릴 엄두는 아직 못 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못 생긴 과일, 벌레 먹은 푸성귀가 완전한 유기농법이거나 최소한 화학비료보다는 땅힘에 더 많이 의지한 농사의 결과임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세상에 그런 농사꾼이 남아 있다는 게 고맙고 존경스러워서 내 소비행위가 그들에게 표하는 경의와 격려가 되길 바란다.

 좀 비싼 듯한 값도 전혀 문제될것이 없는 게 이건 유기농법으로 지은 귀한 농산물이다 싶으니까 우거지 한 줄기도 쌀 한 톨도 못 버린다. 그전같으면 쓰레기통에 처넣었을 먹다 남은 상추를 다시 간장에 무쳐 알뜰히 먹어 치운다.감자 몇 톨을 귀한 손님한테 선물로 싸주면서 이게 얼마나 힘들게 가꾼 살아 있는 먹을 거라는 걸 누누이 강조하면 손님 또한 금싸라기라도 얻어가는 듯한 황공한 얼굴을 한다. 더 비싸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든다. 더 적게 소비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신토불이란 우리 몸엔 우리 땅에서 나는 게 가장 좋다는 뜻보다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땅의 건강상태와 우리 몸의 건강상태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아파트 뜰에 쌓이는 쓰레기만 봐도 공포감이 앞선다. 마구 먹고 마구 버린 과소비가 우리 국토를 황폐화시킨것과 같은 결과가 우리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도 우리가 이 땅이 죽어가는것을 보고만 있을것인가.

 실은 요 조그만 일에 참여한다는 게 자기위안은 될지 몰라도 이 엄청난 흥청망청에 도전할 수 있는 무슨 힘이 될까 싶기도 하고, 예전에 외제만 먹는 일부 소수에게 우리가 갖던 반감을 남이 나에게 갖지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이 들 적도 있다. 그럴수록 말썽많은 농협이 믿을 수 있는 농협으로 거듭나 정말 할 일을 하게 되길 바라게 되고, 그러려면 이런 작은 협동조합운동도 거대한 농협이 본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