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보맨클럽/악성 유언비어 “온상”(현장출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보맨클럽/악성 유언비어 “온상”(현장출동)

입력
1994.03.07 00:00
0 0

◎대기업간부서 기관원까지 고루 참여/만일의 사태대비 철저한 「구술원칙」/국가기밀 유출 위험도 서울 여의도 증권타운에 있는 한 고급레스토랑의 구석방에는 넥타이를 맨 30대 청년 10여명이 정기적으로 모여든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재빠르게 수첩에 메모해나간다.

 『대통령과 절친한 모목사는 대북밀사로 맹활약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AL기폭파범 김현희씨가 미국방문을 재차 시도하고 있답니다』 『민자당이 최근 모야당대표의 입당을 추진하고 있는데…』

 언론매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을 거의 1시간여동안 쏟아내고 받아 적은 다음 참석자들은 자리를 떴다. 여의도 일대의 밀실이 있는 음식점에서 베일속의 정보맨들에 의해 벌어지는 정보맨클럽의 모습이다.

 정보맨클럽은 다양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교환·수집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규모 모임. 정보맨클럽 외에 정보소모임, 정보회의, 정보협의체, 정보패밀리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기업체 증권회사 행정부 정치권등의 관계자 5∼10명으로 구성된 클럽은 매주 한번정도씩 모임을 갖고 정치 경제 사회동향에 대한 각종 정보나 루머를 주고 받는다. 모 증권회사의 정보담당자 M씨(33)가 전하는 정보맨클럽의 운영실태.

 『제대로 체계를 갖춘 클럽에는 대기업체·증권회사의 정보담당자, 국회의원 비서나 정당관계자, 중앙부처 공무원, 언론인등 각계인사가 고루 참여하고 있습니다. 안기부, 경찰등 정보기관원이 끼이는 수준 높은 클럽도 있고 증권회사나 기업체의 정보맨들로만 구성된 클럽도 있습니다. 모임은 대개 매주 한번씩 증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나 명동의 음식점에서 열립니다. 참석자들이 1주일간 수집해온 정보나 루머를 5∼6건씩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받아 적습니다. 메모를 교환하는 경우도 있지만 만약의 문제에 대비해 구술하는 게 원칙입니다. 대기업체나 증권업계의 정보맨들은 대체로 2∼3개 클럽에 가입해 있습니다. 한 모임에서 얻은 정보를 다른 모임에서 풀어놓다 보니 여러 클럽에서 주고 받는 내용이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정보보다 특정 산업분야의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특수정보클럽」도 있다. 이런 모임은 동종업자들과 정부 관련 부처간의 원활한 협조관계 유지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어 일반 클럽만큼 자주 모이는 편은 아니다. 문화산업계의 J씨(31)는 『관련부처 공무원, 동종 업계 종사자, 정보기관원들로 비공식 모임을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클럽은 5공초 신군부의 동향에 민감한 대기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정보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대기업 정보맨들은 정부나 다른 기업 관계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정보를 수집하다가 효율적 정보교환을 위해 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 80년대 중반이후 증시가 활성화하면서 증권가를 중심으로 정보클럽이 늘어났고 증권회사뿐 아니라 대기업체 대부분이 정보팀을 운영함으로써 정보클럽은 계속 증가했다. 김영삼정부 출범후에는 언론자유가 대폭 확대됐으나 기존의 정보채널이 대폭 바뀌어 정보수집조직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K그룹의 정보맨 K씨(30)는 『개방시대를 맞은 기업들이 「사느냐 죽느냐」의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다 사정정국까지 겹쳐 고급정보가 더욱 중요해져 정보클럽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 정부 출범후 민자당 민주계의 소위 실세 국회의원 비서들은 한 두차례씩 정보클럽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민자당 민주계 의원의 비서관 C씨(33)는 『대학동창 소개로 지난해 가을 정보클럽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대기업체 직원, 언론인, 민주당의원 비서등이 회원이었는데 그 모임에서 내가 하는 말이 자칫 의원님의 견해로 오해될것같아 그뒤엔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원들의 정보수집능력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경향이 늘면서 회사원들로 구성된 클럽도 늘고 있다. 회사원 K씨(31)는 『관계, 기업계, 언론계, 법조계, 학계에 있는 친구들 10여명이 클럽을 만들어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면서 『현대인에게 정보클럽 하나 정도는 기본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보클럽이 확산되는 이유는 정보 풀(POOL·공유) 덕분에 단시간에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일차적으로 검증할 수 있으며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의견교환으로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등이다.

 그러나 정보맨들에 의한 정보클럽은 부작용이 더 많은 실정이다. 우선 악성 루머의 조직적 출하장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 증권업계에 종사했던 J씨는 『정보맨클럽이 루머공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경쟁기업이나 정적을 음해하는 유언비어를 의도적으로 유포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례로 지난해 한국증권거래소가 조회공시한 증시풍문 1천3백85건중 64%(8백86건)가 사실무근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민자당 민주계측 인사들은 『클럽의 회원들은 기득권층 인사가 대부분이어서 지난해에는 새 정부의 개혁에 제동을 거는 유언비어를 양산해냈다』고 주장한다.

 또 최근에는 정보맨클럽에서 거론된 내용들을 정리, 책자로 만들어 파는 정보상인들까지 등장해 루머가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이중 「정보동향」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정기구독하는 국회의원만도 30여명에 이르는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보집에는 대통령과 여야 중진의원, 주요 재벌기업과 기업인, 군부동향등이 비교적 상세히 정리돼 있고 저명인사들의 시시콜콜한 신변잡사까지 기록돼 있다. 최근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보상인들과 정보맨클럽을 겨냥한듯 『정치적 목적으로 악의적인 루머를 만들어 퍼뜨리는 조직이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보맨클럽을 통해 국가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크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CIA의 울시국장이 극비리에 방한했다가 언론에 추적당한데 이어 주요 국가정책이 발표전에 유출되는 일이 잦아진 점등도 정보클럽의 활동과 관계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정보맨들은 정보를 수집할 때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원칙으로 하는데 일부 정보기관원들이 클럽에 나가 부주의하게 국가기밀을 흘릴 개연성이 있다는것이다. 5공말기에는 국가정보기관원 2명이 아예 정보장사에 나섰다가 자체 감찰에 걸려 징계받은 적도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보맨클럽을 통해 유통되는 루머는 국가 정책결정과정을 교란시킬 위험성이 있다. 한 민자당의원의 보좌관은 『정보기관원이 클럽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가 있는것으로 안다』며 『유언비어가 걸러지지 않으면 국가 정책결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김광덕기자】

◎「루머」의 일생/“발 없는 말”… 갈수록 눈덩이/「장사꾼」들 유포 앞장… 급속 전파/진위떠나 당사자엔 치명적 상처

 고급정보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정보딜러들이 가치를 인정할만한 수준급 정보는 사람의 몸을 도는 혈액처럼 체계적인 유통경로가 있다.

 그러나 조작된 정보라 할 수 있는 루머는 일부 조직에 의해 만들어져 유포되거나 무책임한 대화에 의해 생겨나 전파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루머의 생성과 유포과정은 다음과 같은 식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A씨는 어느 날 동료보좌관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무심코 『노동위의 B, C의원이 한국자보로부터 돈봉투를 받았다더라』고 말했다. 이날 하오 의원회관에는 이런 소문이 쫙 퍼졌다. 의원보좌관 D씨는 그 다음날 아침 자신이 가입한 정보클럽모임에 참석, 의원회관에서 들었던 루머를 전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증권사와 대기업 정보맨들은 곧 그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상부로 올렸다. 보고서를 본 대기업체사장 E씨는 그날 저녁 대학동창들과의 저녁식사때 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맞장구쳤다. 

 한 정보클럽에서 거론된 이 루머는 하루 사이에 다른 정보클럽과 증권사 객장 등으로 번져나갔다. 또 「루머장사꾼」들은 이 내용을 문건으로 만들어 기업체, 의원회관등에 유료로 배포했다. 

 어느날 상오 E증권회사 모지점에서 F씨가 투자자로 가장해 직원에게 『G기업이 유·무상 증자를 한다는 대외비를 오너측으로부터 알아냈다』고 넌지시 말했다. 사실과 다른 이 호재성 루머는 삽시간에 지점 객장에 유포됐다. 지점에서 루머를 담당하는 직원 H씨는 본사에 전화를 걸어 전달했다. 본사의 증시정보 담당자 I씨는 이날 낮 정보클럽에 나가 G기업의 루머를 전파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전국의 증권사 객장에서 G기업얘기는 이미 구문이 돼버렸다.

 루머가 지나간 흔적은 말끔히 씻겨지지 않으며 진위가 밝혀지기 전에 이미 기업이나 개인이 치명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5공때 「청와대 관련설」로 도산한 C식품은 대표적인 루머의 피해자였다.【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