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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의 「추부인」/박정수(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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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의 「추부인」/박정수(메아리)

입력
199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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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의 제갈공명(AD 181∼234)이 간지 1천8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공명의 부인은 당대의 명사 황승언의 무남독녀. 황처녀는 천문,지리에 통달해 지모는 공명에 버금갈만 했다. 그런데 어찌 그리 박색이던지 긴 얼굴은 검은데다 얽었고 노랑머리에 뻐드렁니였다. 

 전설은 신랑·신부가 맞선본 후 우여곡절끝에 첫날밤을 치르기까지 엮는 배꼽빼는 해프닝을 무궁무진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공명취처」는 또 경극의 가장 인기있는 소재다. 『공명의 색시 고르는 법만은 배우지 마라. 겨우 황씨네 못생긴 처녀를 아내로 맞았지』라는 속담도 있다.「조선의 공명취처 전설」까지 전해져 회자될 정도다. 

 『황처녀는 아리따운 가면을 쓰고 신방에 들어 가 시험했다. 공명은 홀리기는 커녕 「웬 계집이 무례하게 남의 방을 엿보느냐」며 크게 꾸짖었다. 돌아서서 가면을 벗은 황처녀는 용모를 경시하고 재주를 중히 여기는 공명을 경모하며 비로소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마치 삼국지판 「YS」 「콜」 「최불암」 시리즈 제1탄, 제2탄…을  보는 듯하다.

 대개 이런 우화같은 유머는 당사자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바탕한다. 그렇다면 황부인의 매력 포인트는 과연 어디일까. 황부인은 공명이 척한의 승상이 되는 날 스스로 촌부의 길을 택했다. 묵묵히 손수 농사지으며 자녀교육에 전념했다. 생계비는 오로지 남편의 봉록에만 의존했다. 가산은 극히 빈한했지만 일생 일전한푼 눈먼 돈 넘보는 일 없었다. 공명이 후주 유선에게 표를 올려 아뢴적이 있다. 

 『신은 재산에 여유가 없고 아내는 여벌의 옷이 없습니다. 재산은 뽕나무 8백주와 메마른 밭 15경(1경=약 2만평) 뿐입니다…』  이는 아마 사상 최초의 「재산공개」였을 것이다. 

 권력과 재력을 함께 거머쥔 세도가에게 백성은 무서워 복종할지라도 결코 사랑하며 따르지 않는다. 이 만고의 진리가 「황부인 시리즈」의 역설적인 해답인 것이다. 

 출장입상하던 공명은 삼국지속 만의 영웅이 아니다. 공명은 진시황과 함께 중국인이 가장 열띤 갈채를 보내는 민족적 슈퍼스타다. 한 시인은 성도에 있는 제갈무후사,  그가 숨져 천하일통의 꿈을 찬 땅에 묻어야 했던 오장원과 정군산을 찾아 『대장부로서 예 와 울지 않을 자 누구 있으랴』고 읊었다.  공명이 받는 이토록 큰 영예의 절반쯤은 어쩌면 황부인의 몫으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 

 문민정부 1년만에 정가는 재산공개의 후유증으로 다시 한번 몸살했다. 모든 공직자는 모름지기 제갈공명부부의 청렴검박한 삶의 자세를 한번쯤 깊이 성찰해봄직도 할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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