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은 극으로 말해야 우리나라 현대연극사에서 지촌 이진순선생(1916∼1983)이 남긴 자취는 광범위하고도 깊다. 불확실한 시대와 열악한 공연환경 속에서 연극예술의 기틀을 만들고 발전시키는데 온힘을 기울였던 그의 10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추모무대를 마련하고 체호프의 「갈매기」를 공연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작품의 내용과 표현양식을 볼 때 서양근대연극을 소개하고 사실주의를 한국무대에 정착시키려했던 고인이 생전에 가장 애착을 느꼈던 희곡이 「갈매기」였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896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갈매기」는 얼핏보면 한적한 시골에서 벌이는 사랑이야기의 사실적 묘사인듯하다. 하지만 체호프는 일상의 저변에 인생에 대한 관조, 연극에의 열정, 예술인들의 유형에 대한 관찰을 상징성있게 심어놓고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희곡의 깊이를 진지하게 파고들기보다 공연의 의의와 호화배역진만을 내세운 행사같아서 실망스러웠다.
우선 연출의 부재가 가장 두드러진다. 작품의 이해, 인물분석과 표현, 무대장치와 의상의 기능과 예술성의 조화, 극흐름의 운용, 어디에서도 연출가의 창의적 해석과 통제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몇몇 주연급 배우들은 체호프가 섬세하게 그려놓은 인물속에 녹아들기보다는 자신들의 모습을 과시하는데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이진순선생이 30여년 전에 소개했고 작고하기전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갈매기」를 그의 제자들이 무대에 올릴 때 명작의 원숙한 공연을 보리라 생각했던것은 지나친 기대였을까?
이제는 한국연극계의 중진이 된 그들이 스승이 세우려했던 전통을 무대위에서 진지하게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모르는 관객들은 어디에서 그의 자취를 볼것이며, 젊은 연극인들은 어디에 기대어 옛것을 배우고 새것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 문득 「갈매기」의 인물들이 새로운 상징이 되어 떠오른다.
타성에 젖은 자기중심적 배우의 어머니 아르카디나, 부단히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나 목적없이 재능을 낭비하고 자살하는 아들 트레블레프, 예술가에 대한 선망으로 연극에 뛰어드나 결국 진부한 배우로 남는 갈매기와 같은 처녀니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비극적 상황이 우리 연극계의 현실과는 상관없는 것일까?
스승에 대한 추모도 연극에의 애정도 연극인은 연극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체호프는 「갈매기」에서 의사 도른을 통해 말한다. 『예술가를 선망하고 존경하는 것은 이상주의』라고. 과연 평생을 헌신한 예술가와 그의 업적을 존경하는 것은 이상으로 머물러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예술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는 예술인 자신들의 소명의식과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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