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옛 사랑」이야기들 중에서 어떤 이야기는 마치 나 자신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애틋한 느낌을 남긴다. 그 이야기들에 이끌려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던 젊은날로 돌아간다. 성공적인 전문직 여성으로, 또 성공적인 주부로 미국에서 살고있는 한 친구는 어느날 졸업 25주년을 맞는 동창들을 창립기념일에 초청한다는 모교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그가 떠올린것은 같은 과 같은 학년이었던 「옛 사랑」의 얼굴이었다. 『그 행사에 가면 그도 오겠구나』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속엔 뚱뚱한 중년부인이 있었다. 『안되겠구나. 좀 말라야겠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모교창립 기념일에 서울로 가기 위해 그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석달동안에 그는 7㎏을 뺐다.
마침내 그는 서울에 와서 졸업 25주년 홈커밍 잔치에 참석했고, 옛 사랑도 만났다. 동창생들은 부부동반으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함께 했는데, 25년만에 만난 그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얘기는 고작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옛모습 그대로군요』라는 따위의 판에 박힌 인사였다.
우리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탄성을 올린 대목은 그들의 상봉장면이 아니고, 석달동안 7㎏을 뺐다는 부분이었다. 『야, 멋지다. 너는 무뚝뚝한 성격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섬세한 생각을 했니?』 『너의 남편은 네가 왜 갑자기 날씬해지는지 알고 있었어?』 『다이어트에는 옆에 있는 남편보다 멀리 있는 옛애인이 효과적이구나』라고 우리는 떠들었다.
또 한 친구는 30년전 골탕을 먹이고 떠났던 옛 애인이 갑자기 독일에서 돌아와 뒤늦은 용서를 빌었다면서 눈물을 흘려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금 네가 울만큼 그 사람이 중요한 존재였어?』라고 우리가 묻자 그는 『20대에 옥신각신하며 괴로워하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의 사과를 받으며 그때 생각이 났어. 그 시절에 우리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그 사람도 30년씩이나 미안하다는 마음을 간직했을거야. 사람 때문에 운것이 아니고, 순수했던 날들이 영원히 흘러갔다는 생각 때문에 운거야』라고 말했다.
희미한 옛 사랑이 모두 아름답지 않고, 순수했던 사랑만 아름답게 기억된다는것은 「순수함」이야말로 우리의 평생재산이라는것을 새삼 일깨운다. 그러니 젊은날에 순수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중요한 재산 하나를 평생 갖지 못할것이다. 『옛날 애인 없는 사람은 어떻게 7㎏을 빼나』라고 우리 친구중의 하나는 한탄했는데, 그 한탄은 「농담반 진담반」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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