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인 1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는 1백30여명의 직원들이 나와 판문점 남북실무대표접촉을 위한 준비를 벌이고 있었다. 수석대표인 송영대통일원차관을 비롯, 장재롱외무부미주국장, 김일무국무총리실심의관등 우리측대표들도 각각의 집무실에서 대기했다. 전날인 2월28일에는 남북연락사무소 전화선이 폐쇄되는 하오5시까지 이영덕부총리실에서 통일원 관계간부들이 모여 북측의 회신을 기다렸다.
북측의 회신이 온것은 1일 상오11시15분. 우리측이 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시각인 상오10시가 한참 지난뒤였다. 우리측에서는 북한측이 미·북접촉에서 합의된 남북접촉 날짜를 왜 연기했을까를 분석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작 우리측의 회담제의 일시가 무시된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긴 이처럼 「바람맞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난해 6월에는 북한측의 고집스러운 주장을 전폭 수용,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접촉을 수락한다는 황인성 당시 국무총리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보냈다가 회담예정 당일까지 묵살된적이 있다. 이때 북한은 이틀이 지난뒤 그것도 정식통지문이 아닌 방송으로 「특사교환 무산」을 일방선언 했었다.
예전에는 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평양에서의 제4차 고위급회담 예정일을 이틀 앞둔 91년8월20일. 북측은 갑자기 연락관접촉을 통해 남측에 콜레라가 발생, 평양에 전염될 우려가 있으므로 회담을 판문점에서 갖자고 주장하더니 결국 방송을 통해 회담을 연기하고 말았다. 우리대표단은 그때 평양행 차량에 올라타기 직전이었다는 후문이다.
회담을 거부하는 내용이든, 연기하는 내용이든 회신은 최소한 제의된 회담일시 이전에 반드시 와야한다. 형식적이고 지엽적인 일이라고 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남북대화가 시작된지 20여년이 지났다. 무시되고 묵살되고, 그럴때 마다 의당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 「가시적인 성과」 「남북관계의 전기」 마련만을 서두르다가 이제는 남북한간에 공정한 대화관행을 다시 정립하기 힘들어질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이게 북한 책임인가, 우리측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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