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제 대중문화상품에 대한 국내 시장의 개방 여부를 둘러싸고 조용한듯 하면서도 꽤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침투해 있는 것이 현실이면서도 의식의 수준에서는 아직 일체의 일본적인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편한 심사로 쳐다볼 수 없는 것도 또다른 현실인 처지에 논쟁은 당연한 일이다. 개방론은 이미 일본문화가 상당히 침투되어 있는 마당에 공식적 차원의 시장봉쇄는 현실적인 득도 없고 개방화의 명분에도 어긋난다는 논지를 근거로 한다. 이에 비해 개방불가론은 현실적으로 일본의 저질 대중문화(예컨대 만화(!)나 영화)가 우리의 시장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그리고 굳이 저질이 아닌 경우에도 일체의 「왜색」에 대한 저항감이 어우러져 아직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유를 분명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방불가론에 대해 크게 공감하면서도 그 근거로 제시되는 논지는 문화적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는 것같아 대단히 기분이 상한다. 저질이든 아니든 일본문화가 우리의 문화를 압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론은 그 점에 대한 동의 여부에 앞서 우리 스스로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신감 부재를 실토하는 것같아 씁쓸한 기분을 이루 다 표현하기 힘들다.
「왜색」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는 일본문화에 대한 저항감은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불쾌한 추억, 우리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적 침투와 지배에 대한 우려 등 어떤 하나로만 축소·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의식의 표면 위에서 표출되는 저항감만 갖고는 시장의 공식적 개방 여부에 관계없이 밀려오는 일본의 문화상품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유입되는 외래문화를 자신에 맞게 바꿀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중심의 마련일 것이다. 일본문화에 대한 우려는 그에 대응할만한 독자적인 문화생산능력의 부재를 실토하는 일일 뿐이다.
상품화된 일본의 대중문화가 대량 밀반입되어 소비 내지는 향수되고 있는 우리 실정에 대해 어떤 이는 두 민족간의 기호의 유사성을 들기도 한다. 이것을 쉽게 부정할 수도 없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각종 신문·잡지 또는 TV같은 상업주의적 대중매체들의 손쉬운 장사방식 덕분에 일본식 문화에 길들여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배제할 수가 없다. 명분적으로는 일본문화가 수입금지된 상황에서 밀수입된 일본 대중문화가 일본문화인지도 모른채 마치 독자적으로 생산된 것으로 오인되어 아무런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수용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우리를 우리로서 인식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적 징표를 갖지도 않고 만들지도 못하는가? 소질이나 잠재능력 면에서 볼 때 그렇지 않다고 할만한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일본이 서양식 발전방식을 꾀하기 전까지 수천년동안 우리는 일본에 대한 문화전수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지 않았던가.
자존심을 몹시 건드리는 현재 우리의 문화상황은 결국 우리 자신의 탓으로 밖에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이 우리의 능력과 무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노력부재로 돌릴 수밖에 없다. 독자적 문화생산의 작업이 반드시 경제적 발전수준과 직접 관련되는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룬 현 시점에 와서 더 크게 일본문화에의 예속을 우려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하에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경제논리와 직접 연결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문화생산은 상당한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 투자의 효과는 상당히 느리게 나타나고 또한 얼른 눈에 뛰지 않는다. 그러나 단기적 효과만 염두에 두는 투자만을 생각한다면 10년, 20년후에도 우리는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일본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개방화·국제화의 노력 일반과 관련된 문제이다. 즉 자신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개방화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해주는 사건이다.
독자적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독자적 문화생산작업에 대한 투자가 과학기술에 못지 않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본 뿐 아니라 누구에 대해서도 영원히 피해자의식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의식을 오히려 심화시킬지도 모른다.【서울대교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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