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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러 작가 아나톨리 김 장편「아버지 숲」(문학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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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러 작가 아나톨리 김 장편「아버지 숲」(문학살롱)

입력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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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보다 강인한 휴머니즘 통찰/3대 이야기로 러 현대사 짚어/한국적 인고와 대지의 생명력이 함께 아나톨리 김(55)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구소련에서 환상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했던 독특한 한국계 러시아작가이다. 그의 장편소설 「아버지 숲」(김근식 번역·고려원간)이 최근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투라예프 집안 부자 3대의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의 현대사를 짚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해야 했던 청년들의 고뇌는 많은 러시아인의 공통된 역사체험이자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의 체험이기도 했다.

 한인이자 러시아인인 작가는 러시아 역사의 흐름을 재현하면서 한국적인 인고와 대지적인 생명력을 작품 속에 불어넣고 있다. 천민 출신의 여인 베라에게서는 한국의 시골 아낙에게서 볼 수 있는 순박함이 느껴지고, 영원한 안식처 아버지의 숲에서는 전형적인 농경사회 마을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민중의 안녕을 위해 봉사하라」는 유언을 하고 떠난 아버지를 기억하는 귀족청년 니콜라이는 여동생 리다의 집에서 식모 베라에게 반한다. 그는 아버지의 숲에서 베라와 사랑을 나눈다. 러시아 혁명 후 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니콜라이는 아들 스체판에게 따뜻한 정 한번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스체판은 혁명 뒤 잇단 전쟁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아버지의 숲을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마친다. 스체판의 아들 글렙은 대학 물리수학부 2년 때 징집돼 자신의 학문이 처절한 전쟁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역시 아버지의 숲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숲」은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소련 사회를 뒤흔들던 89년 자유주의적인 문학잡지 「신세계」에 4개월간 연재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뒤 일주일 만에 20여만부가 팔릴 정도였다.

 당시 소련인들은 혼란한 사회에서 「아버지 숲」과 같은 안식처를 원했으며, 사회주의 혁명에 비견되는 개방물결 속에 삶에 대한 진실성을 잃지 않는 투라예프 집안의 부자들에게 매료됐다.

 자칭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작가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고,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아나톨리 김은 「나이팅게일의 메아리」, 「풀따는 사람들」, 「양파밭」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구소련 문단에서 1급 작가로 평가받았다. 사할린 고등학교, 고리키 문학대를 졸업한 뒤 75년 단편집 「푸른섬」을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70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한인 3세인 그는 문학적으로 완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20여개국에서 출판됐으며, 현재 중앙대 노문과 대우교원으로 한국에 와 있다.【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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