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점 60년. 묵은 책내음과 더불어 감회가 깊다. 한 사람이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일로 지켜온 세월이 결코 짧지가 않다. 파란과 인고의 세상을 용케도 견뎌냈다. 정도 6백년을 맞는 서울에서 「서울의 천직인」을 만날 수 있음을 기뻐한다. 문화의 거리로 불리는 서울 관훈동 초입의 통문관이란 고서점은 전국을 통틀어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점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달에 꼭 개업 60돌이 된다. 주인 이겸로옹(86세)의 오랜 회상은 3월초순이었던 것만이 아련할 뿐, 그만 정확한 개점 날짜를 잊어버리고말았다. 곰팡내라도 날듯한 고포엔 지금도 2만여권의 국학서적들이 15평의 비좁은 공간에 빽빽히 차있다.
이옹이 책방을 차린 것은 1934년 3월이었다. 그전에 17세 때부터 9년동안 서점종업원으로 일했다. 26세 때 자신이 직접 책방을 경영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있던 김문당 고서점을 친구로부터 인수했다. 그리고 이름을 김항당으로 고쳤다가 45년 해방과 함께 통문관으로 바꾸었다. 고려 때 역관을 양성하던 곳의 명칭이다.
그동안 이 책방을 다녀간 고객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각 대학의 수많은 교수들과 박물관장 등은 이옹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왔다. 반드시 헌책을 사들여 되파는 것만이 그의 일은 아니었다. 학자들이나 박물관, 도서관 관계자들로부터 희귀·진귀본의 분실내용을 전해 들으면 꾸준히 수소문해 이를 되찾고 보존시키는 것도 큰 일이었다. 또 이를 영인출간하는 것도 사명으로 알았다. 해방과 함께 없어졌던 「월인석보」를 되찾아 대학도서관에 보존케 했고, 「청구영언」, 이윤재선생의 「성웅 이순신」 등 50여종의 중요 문헌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씨는 책방의 주인이자 전적의 수호자였고 출판인이며 귀한서적의 수집가였다.
통문관 개업 60돌에, 서점과의 연으로 따지면 70년이란 기록을 눈앞에 둔 요즘에도 이씨는 매일 나와 서점을 지키고 있다. 가게의 넓이도 개업 때보다 넓어진 것이 없다. 다만 갈수록 책을 찾는 이가 줄고있는 세태의 변화가 한스러울 뿐이다. 자녀들 가운데 두 아들이 이웃에서 역시 고서점을 경영하고 있어 대를 잇도록 되어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직업의식이 자꾸만 희박해져 간다. 천직의식을 찾기가 어렵다. 가업도 당대로 끊기기 십상이다. 대대로의 물림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적성이나 포부 그리고 사회에의 기여는 제쳐놓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수, 더욱 편한 직장을 찾아 직업도 쉽사리 바꾸어버리는 요즘이다. 그러니 이옹은 분명 살아있는 한국의 직업인상이 아닐 수 없다. 별다른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 평생동안 오로지 한길을 외롭게 걸어오며 많은 지식인들을 뒷바라지 하는 일에만 전념해 왔고 또 그 일로 대를 잇게 하려고 한다. 이옹과 통문관의 지금을 보며 다시 한번 직업과 보람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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