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원조 미흡” 판단 민족주의 강화 미국등 서방국가들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러시아가 최근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독자적 목소리를 높이는 등 외교정책을 수정,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같은 조짐은 보스니아사태, 미중앙정보국(CIA) 스파이 스캔들, 구소련 각공화국에 대한 러시아군 주둔 등 최근 일련의 사태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한 최후통첩을 독자적 외교개입으로 무력화시켰으며 나토가 보스니아 비행금지구역에서 세르비아 전투기를 격추시킨 것에도 즉각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을 소외시킨채 서방국들만이 보스니아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보스니아사태 해결에 무관심할 경우 나토가 팽창정책을 추구, 과거 자신의 영향력권에 있던 동유럽과 구소련공화국에 대한 「종주국」의 지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CIA 스파이사건의 경우도 러시아는 세계 각국이 정보활동을 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미국이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특히 미의회 일각에서 러시아에 대한 지원중단 등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데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미 CIA의 러시아스파이였던 올드리치 에임스는 이미 혐의가 포착돼 감시받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왜 러시아가 보스니아사태에 주도권을 쥐게 된 시점에서 터뜨렸느냐는 데도 러시아는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미국내 매파가 러시아를 「악의 제국」의 후계자로서 몰아붙이려는 음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독립국가연합(CIS) 각공화국의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 등에 러시아가 유엔의 평화유지군으로서 CIS 각공화국에서 활동하기를 요청했으나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CIS 각공화국에 압력을 가중시키면서 그루지야 등과 군사조약을 체결, 자국 군대를 배치하는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외교정책의 변화는 국내외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그동안 친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개혁에 서방측이 적극적인 원조를 해주기를 기대했으나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립 서비스」에 그쳤다고 평가하는듯 하다.
구소련시절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추진했으나 서방의 지원미흡으로 결국 실패한 교훈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난국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옐친대통령이 러시아를 외국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다는 지리노프스키등 극우민족주의자들의 비판을 국민들이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도 민족주의 색채를 띠게 된 원인으로 풀이되고 있다.
크렘린궁을 비롯, 의회와 군부 등은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자는 외교정책의 변화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반옐친세력이 다수인 의회가 보스니아에 대한 군대증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흐름에서 파악될 수 있다.
러시아의 태도변화는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한 마찰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주창한 「평화를 위한 동반자 계획」이 우선적으로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CIS 각공화국의 분쟁문제처리, 크림반도 소유권을 둘러싼 우크라이나 갈등문제 등도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미·러시아 고위관리들은 『양국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미 한랭전선이 서서히 다가오는 분위기이다.
국내정치판도가 루츠코이 전부통령의 등장 등으로 민족주의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옐친으로서는 국민의 인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 등 대서방정책에서 보다 강경하고 경직된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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