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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학 연구입문/베르나르 저(다시 보고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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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학 연구입문/베르나르 저(다시 보고싶은 책)

입력
1994.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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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바탕 의학연구방법 제시/“머리없는 손은 맹목적 도구/손이없는 머리는 바로 무능” 철학 같은것은 필요없다고 큰 소리치는 과학자들을 본다. 그런데 그들이 쓴 과학 개설서 앞에는 「과학의 방법」이라는 소절이 있다. 이것은 이만저만 모순이 아니다. 과학의 방법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이다.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방법에 관심을 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 대표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과학방법이라 할 수 있는 논리학 저술을 남겼다. 근대의 갈릴레오와 뉴턴, 현대의 아인슈타인이 모두 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한 과학자들이다. 베르나르의 「실험의학연구입문」(1865)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중요한 철학책이다.

 프랑스가 낳은 19세기 최대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희곡을 쓰다가 먹고 살 직업을 갖고 여가에 시를 쓰라는 비평가의 충고를 듣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마장디의 제자로서 소르본과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고 간의 글리코겐합성, 췌장액의 소화기능, 혈관운동신경등에 관해 눈부신 업적을 냈다. 베르나르는 과학아카데미 회장,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상원의원 같은 최고의 영예를 누렸고 죽었을 때는 과학자로서 처음 국장을 받았다.

 베르나르는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병이 나서 연구를 못하고 고향에 내려가 있을때 깊은 철학적 사색에 잠겼다. 처음에는 끝내 못나온 책의 서문으로 썼던것을 차츰 확장해 가다가 책이 된것이 「실험의학연구입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문체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을 정도로 문학적 향기가 높았으며 졸라의 자연주의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실험의학연구입문」은 과학연구의 기본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자신이 연구한 사례사를 최대한 활용한것이 특징이다. 1부는 실험적 추론, 2부는 생물실험, 3부는 생명현상 연구에 대한 실험적 방법의 응용으로 되어있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실험적 방법은 관찰·가설·실험의 3단계로 진행한다. 여기서 실험은 가설의 검증을 위해 어떤 조건 아래서 행해지는 관찰이다. 수동적인 관찰의 과학은 실험의 과학과는 다르다. 그의 목표는 의학을 실험과학(정복과학)으로 변형하는것이다. 훌륭한 실험가는 동시에 이론가이고 실천가여야 한다. 방향을 잡을 머리가 없는 재주있는 손은 맹목적 도구이며 관념을 실행할 손이 없는 머리는 무능이다.

 강한 생기론을 배경으로 한 베르나르는 생명현상도 불확정 물질을 지배하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는것을 강조한다. 엄밀한 물리·화학적 결정론은 고전적 생기론을 거부한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유물론에도 반대한다. 생명에 방향을 주는 창조적인 요소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기론과 결정론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 「내부환경」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생명이 외부조건 변화의 영향을 받지않고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것이다.

 베르나르의 책은 같은 시대의 생물학자 파스퇴르의 극찬을 받았다. 흔히 고전은 받들어지고 인용되지만 읽히지는 않는 책이라고 하는데 「실험의학연구입문」은 오늘날도 프랑스 고등학교의 철학교재이고 의과대학 앞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이다. 나는 생물학사 강의를 들으면서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다. 50년대에 나온 이영택교수의 번역은 절판이고 유석진교수의 새 번역(1985)이 있다. 송상용 (한림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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