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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노래」/박용배 본사통일문제 연구소장(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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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노래」/박용배 본사통일문제 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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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도 노래가 있고 국가가 있다. 그러나 북에는 국가위에 수령 부자가 있다. 이를 실증해 주는 좋은 예가 국가위에 송가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북에도 국가인 애국가가 있다. 이  애국가가 작사, 작곡된것이 47년. 이때는 미·소공위가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신탁통치를 하려는 때였다. 소련 군정하의 북은 이미 단정을 속에 깔고 국가를 만든것이다.

 그러나 이 국가 제정 전에 수령을 칭송하는 송가가 먼저 나왔다. 송가는 북에서 가장 비중이 큰 가요다. 1967년부터 20년간 수령과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6백곡이 나왔다. 해마다 30곡이 창작된 셈이다.

 송가중 첫번째요, 북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가요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다. 「장군의 노래」는 국가가 나오기 1년전인 46년 4월에 나왔다. 음악 평론가 한상우가 쓴 「북한 음악의 실상과 허상」(89년 신원문화사간)은 이 노래의 내력을 밝히고 있다. 

 수령의 빨치산 동료였던 김책(51년 전선사령관· 연탄가스중독으로 사망)이 흥남비료공장 시찰에 나선 수령을 수행한 시인 이찬에게 가사를 작성토록했다. 이어 작곡가 김원균(현 피바다 가극단 총장·조선음악가 동맹 위원장·애국가 작곡자)에게 곡을 붙이도록 했다.

 소련 군정아래 만들어진 이 노래는 수령이 개인우상화라고 처음에는 사양하는 척했다. 그러나 수령의 권력이 굳어지면서 이 노래는 수령의 위대성, 혁명성을 상징하고 강요하는 첫번째 노래가 됐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아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이란 가사는 수령 우상화의 모본이다.

 더욱이 6·25가 나자 이 노래는 남쪽 시민에게 강권으로 보급됐다. 남침한 인민군들에게는 목숨을 아끼지 말고 수령에게 바치라는 명령의 노래가 됐다.

 북의 「문학 예술 사전」은 이 노래가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수령의 장백산, 압록강 일대의 투쟁업적 혁명정신을 이 노래는 「피어린 자욱」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6·25가 나자 수령의 「피어린 자욱」은 한강·금강·낙동강으로, 지리산·태백산으로 「자욱」을 넓혔다. 그 때문에 남북 민간인 77만9천명이 죽었다. 북·중국지원군, 한국·유엔군 1백82만6천명이 전사했다.

 「사전」은 그럼에도 이런 「자욱」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이 노래는 6·25때는 『인민군용사들에게 불굴의 혁명의지로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을 목숨바쳐 수행케 했다』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을 비롯하여 전체 남반부 인민들에게 심장에서 심장으로 전해져 투쟁을 앞당기는 불멸의 노래가 되었다』는 것.

 이 노래는 또 성장했다. 『전세계 혁명적 인민에게는 흠모와 신뢰의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6·25를 북의 치하에서 겪었던 시민들에게 이 노래는 살육의 노래였고 민족상잔의 구호였다.

 이런 노래가 지난 1월30일 KBS1이 저녁 8시에 방영한 다큐멘터리 극장 「재판관의 고민―유병진판사」에서 1절 전곡이 방영됐다. 남의 6·25를 겪은 시민들이 소름끼치게 영원히 잊지못할 노래를 꼭 방영해야만 했을까.

 우리는 무언가를 잊고있다. 북의 「장군의 노래」는 남침의 선동가였고 학살의 노래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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