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대학」 만들기 함께 뛸터”/자만 버리고 “나라선도” 책임 느껴야/교수평가제 등 거듭나기 노력 환영/과학발전 100억기금… 동창단합 「시멘트역」할것□대담=문창재 사회부장
서울대가 21세기 세계 일류대학을 목표로 개혁조치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대학원중심 교육을 표방하면서 유사·중복학과 통폐합을 시도하고 학생들의 교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고전 2백선을 발표했다. 정보화시대에 발맞춰 전교생에 대한 전산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교수들도 오랜 타성을 벗고 과감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교수의 강의 연구 봉사활동등에 대한 업적을 평가하는 교수평가제도 곧 시행할 계획이다. 동창들도 모교의 개혁에 큰 관심을 표하고 있다. 8순에 접어들어서도 임기 2년의 서울대 총동창회장직을 5대째 연임하면서 모교발전을 위해 왕성한 의욕을 과시하고 있는 원로기업인 우성그룹 최주호회장(80)을 만나 보았다.【편집자주】
―교육 및 연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서울대의 거듭나기 노력이 사회적으로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동창회장으로서 모교의 각종 개혁조치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안주하지않고 세계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연구업적을 냉정하게 평가받고자 하는 교수평가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모교가 자기혁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동창회가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지않습니까. 동창의 한사람으로서 모교발전에 일조가 되지않을까 해서 유럽과 미일의 유수대학을 둘러보고 좋은 점들을 취합, 모교에 조언하고 있습니다. 해외거주 동창들도 같이 거들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발전을 위해 동창회는 어떤 지원사업을 펴고 있습니까.
▲세계는 무한경쟁시대입니다. 새로운것을 창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학의 연구 및 교육발전이 절실한것도 이 때문입니다. 서울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입니다. 수재들이 모인 대학에서 창조적인 연구가 이뤄지려면 발상의 전환이 선행돼야 합니다.
동창회는 92년 모교에 1백억원규모의 과학기술연구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기금은 기업체나 돈있는 사람 한두명으로부터 뭉칫돈을 받는것이 아니라 20만 졸업생의 정성을 모아 십시일반으로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27억원정도 모아졌는데 1년뒤엔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것같습니다. 동창회는 이 기금으로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사람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한국의 과학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서울대의 국가적 소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울대가 우리나라 대학을 여러가지 면에서 선도하고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울대는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교할때 어느 한가지도 나은게 없습니다. 국제화시대에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서울대는 그야말로 선도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생들도 「서울대 출신이 그모양이냐」는 소리를 듣지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울대를 졸업했으니 최고라는 허황된 자만과 빗나간 권위주의도 과감히 털어버리고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평소에 후배들을 거침없이 꾸짖고 채찍질합니다. 지나치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후배들도 간혹 있지만 잘 하라는 뜻으로 하는 충고로 받아들여 주는것 같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등 3부요직에 서울대 출신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습니다. 기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는다면 서울대 동창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동창회가 과학기술 후원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경 얘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우리나라 과학발전의 토대를 서울대가 앞장서 닦아야 합니다.
우수한 두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동창회가 열어주자는 뜻에서 과학기술연구기금을 조성하게 됐습니다.
21세기의 주역은 기초과학입니다. 독창적인 기술개발로 1등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2등은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 남으려면 과학기술의 뿌리인 수학 물리 화학등 기초과학을 튼튼히 해야합니다.
정부와 기업들도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초과학 육성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국제환경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결,즉 냉전이 막을 내리면 평화가 뿌리내릴것으로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습니다. 대포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 「진짜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두뇌의 전쟁, 바로 경제전쟁의 서막이 오른것입니다.
「글로벌리즘」 「공존공영」이라는 말이 풍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혹돼서는 절대 안됩니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시대에 우리가 살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선진국의 로켓을 우리의 달구지가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각오와 신념으로 열심히 일하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창회의 결집력은 어떻습니까.
▲서울대 동창들은 차돌멩이같아서 한사람 한사람은 단단하지만 단결이 잘 안된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래서 처음 회장직을 맡으면서 「나는 시멘트가루의 역할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멘트가루와 물을 결합하면 콘크리트가 되지않습니까. 처음에는 그말을 의아해 하더니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는것 같습니다.
―남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교육개혁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계최고의 교육열이 경제부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래의 미풍양속이 퇴색하고 도덕이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 사회를 올바로 지탱하게 하는 도덕을 바로세우기 위해 대학과 사회와 가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도덕교육은 가정에서 소임을 다해줘야 합니다. 현재 과외비용이 연간 20조원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했더라면 우리경제가 이처럼 허약해지진 않았을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치 사회 경제발전은 획기적인 교육개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8순에도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시는데 특별한 건강비결이 있습니까.
▲평소 종교서적을 탐독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안정을 취하려고 노력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골프를 주로 즐깁니다.
골퍼의 나이와 같은 타수를 치는것을 「에이지샷」이라고 하는데 78세때 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늙지 않으려면 일 하면서 머리를 써야 해요.
요즘에도 유전공학과 컴퓨터 관련서적을 매일 3시간정도 읽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젊음과 건강입니다.
―인생관과 개인적인 경영철학이 궁금합니다.
▲백가지 재주를 가졌더라도 성실한것만 못하고 천번을 생각하는 것보다 한번 실천하는게 낫다는것이 내 인생의 좌표입니다. 성실과 신용은 인생사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자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사는 자기 돈으로 43하는것이지만 기업은 다릅니다. 국민이 모아준 돈으로 운영하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는 국민의 돈을 빌려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정리=김성호기자】
◇약력
▲1914년 전북임실출생
▲39년 서울대(경성제대) 농학과 졸업
▲46∼53년 동아기업 대표이사
▲53∼56년 국영물산 대표이사
▲56∼68년 한국모방 대표이사
▲63∼65년 한일나일론 대표이사
▲64∼68년 한국경제인협회이사및 통 상진흥위원장
▲79년∼ 우성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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