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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의미(1000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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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의미(1000자춘추)

입력
199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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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달력을 잘 들여다보면, 양력 1월1일에는 신정이란 작은 글자가 쓰여 있고 음력 1월1일에는 설날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구정이 온전히 「설」의 자격을 얻었음을 말해 준다. 어원적으로 원단을 뜻하는 「설」과 나이를 뜻하는 「살」은 그 기원을같이한다고 한다. 설은 사람이 나이를 먹는 시간적인 계기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중세 국어에서는 나이의 「살」도 「설」로 나타나므로 설과 살의 관계는 더 밀접했을 것이다.

 한 때는 우리 나라가 구정을 쇤다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하고 나라에서 이를 없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기도 하였다. 어렴풋한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의 하나는 구정에 떡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한 일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가래떡을 만들어 먹었고, 차례를 지냈고, 그렇게 해서 한 살을 더 먹었다. 그 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설날아침에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세월도 변하고, 도회지의 생활 리듬 속에서 우리의 설의 의미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세모에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다. 양력으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우리는 이 새해에 묵은 달력을 거두어 내고 새 달력을 달며, 수첩이나 일기장이나 가계부를 새로 장만한다. 신정을 기준으로 한 삶의 준비이다. 지나간 한 해를 아쉬워 하며 마무리하는 망년회도 양력을 기준으로 한다. 세밑 온정이란 말도 양력에만 쓴다. 연하장도 양력을 기준으로 하여 보내고, 근하신년이란 말도 양력에만 쓰는 듯하다.

 설날방송프로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는 행사를 하는 것이 얼핏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근하신년을 썰매 위에 크게 써 붙인 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설날 휴일은 3일이나 된다. 설날의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가 후반 우리에게 설날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다시 음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날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식은 이미 일반적이 아니다. 그것은 휴식의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이미 다른 한 해가 시작되어 숨가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설날은 우리 속에 작은 글자로 숨어 있던 「조상과 가족과 고향과 전통과의 만남」의 의미로 남는다.<임홍빈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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