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주총… 총회꾼… 자율…/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주총… 총회꾼… 자율…/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2.26 00:00
0 0

 매년 이맘때 열리는 은행 주주총회에는 빠짐없이 출연하는 「단골연기자」들이 있다. 이들은 주총회장을 십여명씩 떼지어 몰려다니며 순조로운 의사진행을 거들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자리도 회의장 맨앞 좋은 좌석만을 골라잡아 앉는다. 이른바 「총회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올해 은행주총에도 총회꾼들은 예외없이 등장했다. 은행의 특별한 쟁점이 없어 일정이 너무 빨리 끝날것 같으면 발언권을 신청,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질질 끈다. 좀 시끌시끌해야 할 주총회장이 너무 조용하면 괜히 고함도 치고 집행부를 공박하는 제스처도 취한다. 재무제표를 따져 묻거나 경영진을 질타하는 주주들의 목청이 커져 회의가 길어지면 총회꾼들은 「원안대로 통과하자」 「은행장에게 전권을 주자」 「보고는 유인물로 대체하자」는 말로 의장의 의사봉을 재촉한다.

 은행으로선 이런 총회꾼들이 때론 거추장스럽기도 하지만 고마운 존재다. 의사진행의 시간조절은 물론, 집행부에 대한 적당한 성토와 찬사로 주총의 구색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은행측에 주총의 「감초」역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은행도 사례에 인색하지 않다.

 집행부와 총회꾼들이 「주연과 조연역」을 분담하는 주총에서 은행의 진짜 주인인 일반주주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 행여 「입바른 소리」라도 하려면 총회꾼들의 훼방에 당해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은행경영자들에게선 주주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겉으론 늘 주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만 「질의와 반대」는 없고 「동의와 제청」만 있는 주총은 그저 시간과 비용만 들이면 되는 연례행사일뿐이다.

 올해 은행주총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치러져 원년을 맞은 금융자율화는 멋진 출발을 장식한 셈이다. 그러나 주인(주주)들이 한데 모여 토론과 비판, 격려로 열기를 뿜도록 「법인최고기구」인 주총의 자리매김을 다시 하지 않는한 은행의 공공성·자율성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