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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동문서답(장명수칼럼: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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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동문서답(장명수칼럼:1648)

입력
199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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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정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에게 직접 알린다는 점에서 대통령 자신에게나 국민에게나 매우 유익한 기회다. 특히 방송으로 현장중계되는 기자회견은 인쇄매체들이 활자로 한번 걸러내거나 요약하지 않은 대통령의 발언 전체를 육성으로 듣게되므로 회견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25일에 있었던 김영삼대통령 취임1주년 기자회견은 아쉬움을 남겼다. 김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말솝씨 없는 정치인」이다. 어휘, 발음, 표현력이 두루 부족하여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원고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마조마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말솝씨가 없다는 것만으로 대통령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솝씨가 없다는 것과 말의 내용이 허술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말솝씨는 대개 천부적으로 타고나지만, 말의 내용을 만드는 것은 노력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탄탄하게 채워주는 역할은 비서실이 해야 한다. 통상적인 기자간담회도 아니고, 대통령취임 한돌을 맞는 기자회견이라면, 비서실은 모든 예상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자료를 만들고, 대통령은 그 자료를 완전히 파악할 만큼 사전준비를 했어야 한다.

 지난 1월초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마친후 청와대 비서실은 『지금까지의 대통령 연두기자회견과 달리 이번에는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 답변을 준비하지 않았고, 예상질문도 만들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의 답변이 전적으로 자기실력에 의해 즉석에서 이루어졌음을 은연중에 자랑했었다. 우리는 그 자랑이 사실이 아니기를 빌었다.

 대통령비서실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직무유기다. 대통령은 말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완전하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비서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을 보면서 우리는 청와대비서실이 과연 자기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대통령의 답변은 때때로 질문에서 벗어나 멀리 헤맸고, 몇차례 동문서답이 나왔고, 부족한 어휘와 표현력이 듣는 이들을 갑갑하게 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후보시절 관훈토론회를 앞두고 열심히 준비하여 자기수준을 높인 적이 있는데, 이번 회견에서는 그런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동문서답이 더 이상 「애교」일 수는 없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높은 수준의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요구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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