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열리고 있는 전경련회장단회의는 마치 정부의 「경제장관회의」같다. 재계총수들이 갖는 비중이야 이미 오래전에 「일시직」인 장관급을 넘어섰지만 논의되는 내용 자체가 경제장관회의에서나 다룸직한 정부의 정책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황금알을 낳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작업을 정부가 알아서 전경련에 맡겨버리는 바람에 굵직하고 핵심적인 정부정책을 재계총수들이 다루게 된것이다. 이를 계기로 재계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재부」로 자리잡게 됐다. 정부에 대한 대칭개념으로서의 재부는 갈수록 엄청난 파워를 행사할것이다. 재계의 파워가 새삼스러운것은 아니다. 돈의 위력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이미 3공때부터 재계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재계가 격식과 내용을 모두 갖추지는 않은 상태에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데 비해 앞으로는 정책결정자로서의 격식까지 온전히 구비하게 된것이다.
정부의 규제완화 바람은 재계를 재부로 격상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역시 정부의 자기역할 망각이다. 제2이동통신의 선정작업은 사업자로 선정만 되면 투자리스크가 제로인 상태에서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는만큼 경쟁이 극도로 치열했고 잡음이 많았다.
지난 92년 정부가 당시 노태우대통령과 사돈관계인 선경그룹을 2통사업자로 선정, 발표했다가 엄청난 의혹을 불러일으켜 자진반납 형식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새 정부는 이러한 잡음과 부담을 우려, 마치 뜨거운 감자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버리듯이 선정권, 정책결정권을 전경련에 넘겨버렸다. 민간의 자율결정을 중시한다는 포장으로 실질적으로는 자기의무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한것이었다.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철학이 없는 정부의 도움으로 재계는 재부로 탈바꿈했다. 최근의 분위기로 보아 정부의 퇴조와 재부의 부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위력으로 따져볼때 고삐에서 풀린 재부는 립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은 제4부가 아니라 그위에 군림하는 통괄부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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