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아날로그에 1조엔 투자” 거센 반발/정부선 국제고립 우려… 연구는 계속키로 일본이 21세기 세계전자업계의 판도를 좌우할 차세대 고화질TV(HDTV)의 방송방식변경여부를 놓고 엄청난 내부진통을 겪고있다. 아날로그방식을 디지틀방식으로 바꾸려는 우정성의 정책변화에 대해 관련업계가 강력히 반발, 결국 백지화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주요정책을 바꿀 경우 소관부서와 업계간의 사전조율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일본에서 이같은 이례적인 사태를 낳은 장본인은 우정성 에가와(강천황정) 방송행정국장이었다.
일본 HDTV의 정부실무책임자인 에가와국장은 지난22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유럽이 디지틀방식을 채택하는 추세에 NHK의 아날로그방식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사기다』라며 우정성이 추진해온 HDTV의 아날로그방식을 포기하고 디지틀방식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가와국장은 하루뒤인 23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HDTV의 방식변경을 실시할 의향이 없다고 밝히면서 전날의 발언을 사실상 철회했다.
에가와국장이 이처럼 하루만에 발언을 번복한 것은 현재 아날로그방식인 HDTV 하이비전을 시험방송중인 NHK와 가전업계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우정성이 이처럼 가전업계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HDTV방송방식의 변경에 적극적인 것은 일본이 HDTV시장에서의 국제적 고립은 물론 멀티미디어분야에서도 뒤지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된다.
일본은 NHK가 64년부터 HDTV의 기술개발에 착수, 83년에 세계최초로 아날로그방식 HDTV생산에 성공했다. 일본의 차세대TV시장 주도권장악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끈질긴 로비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은 일본이 개발한 아날로그방식의 채택을 거부했다. 일본식대로 할 경우 2천년대 4백억달러이상으로 예상되는 HDTV시장을 고스란히 일본에게 내 줄 것을 우려한 것이다. 지난해봄 미국과 유럽의 디지틀방식채택이 사실상 확정되자 일본의 초조감은 더욱 심화됐다.
일본은 아날로그식 HDTV를 개발하면서 디지틀기술이 응용될 수 있는데는 15년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전자기술의 발전은 90년대 들어 급상승곡선을 그린 것이다.
일본에 더욱 불리한 것은 멀티미디어시대가 닥쳐왔다는 점이다. TV와 통신, 정보산업등이 결합한 멀티미디어는 디지틀방식만이 통하게된 것이다. 따라서 아날로그방식 HDTV를 고집할 경우 21세기에는 HDTV는 물론이고 세계전자업계의 황금시장인 멀티미디어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일본가전업계가 이 사실을 모르고 우정성의 디지틀화방침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가전업계가 기를 쓰고 정부에 대드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용화된 아날로그 HDTV가 이제 겨우 보급단계에 들어섰고 약1조엔의 개발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미국, 유럽의 디지틀방식 HDTV를 개발하는데는 아직도 10년정도는 기다려야 되고 디지틀방식이 나와도 아날로그 HDTV에 변환기를 달면 시청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 디지틀HDTV가 나오기전에 하이비전을 많이 팔아 투자비를 뽑겠다는 속셈이다.
우정성은 이번 소동으로 일단 디지틀화 검토방침을 철회했으나 연구는 계속, HDTV를 포함한 방송의 디지틀화 여부에 대한 정부의 장기전략을 7월까지 정리할 계획이다. 이번 소동도 디지틀방식 전환을 위한 일본 우정성의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도쿄=안순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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