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등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정부가 지정한 생활보호대상자나 소년소녀가장들은 관내 기관장으로부터 조그만 선물을 받는다. 대개 1만∼3만원정도의 생활용품을 담은 이 선물의 포장지에는 명절인사와 함께 관내 기관장의 이름이 굵은 글씨로 박혀있게 마련이다. 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기관장이 보낸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해할것이다. 그러나 이 선물의 출처는 기관장 개인돈도 아니며 기관예산도 아니다. 불우이웃을 돕는다며 일선행정기관이 모금한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장만된것이다. 이들 행정기관은 선물의 출처만 왜곡한 게 아니었다.
22일 발표된 감사원의 불우이웃돕기성금 감사결과는 일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성금을 거의 반강제로 거둬왔음을 드러냈다. 준조세적 성금은 단 한푼도 안받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아직 생생한데도 일선기관들은 사업인허가등을 이용해 버젓이 기업에 성금을 반강요해왔고 정해진 모금기간도 제멋대로 연장하는 탈법을 저질러 왔다는것이다. 특히 불우이웃을 돕겠다며 모금한 돈을 기관장판공비로 전용까지 했다는 대목에서는 『벼룩의 간을…』이라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한때 「한국의 잠롱」으로 불리던 어떤 시장은 주택조합허가를 내주며 받은 성금을 체육대회등 시운영비와 판공비로 전용했고 경기도에서는 하위직 공무원 경조사에 성금을 지출한 사례도 있다. 엄격히 따지면 이같은 행위는 「횡령」이나 다름없다. 또 그 성금이 어떤 돈인가. 이번에 밝혀졌듯이 성금의 대부분이 기업들이 마지못해 뭉치로 낸 돈이라 하더라도 그중에는 시민들이 정말 불우한 이웃을 걱정하며 온정을 담아 자발적으로 낸 돈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개구쟁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접수시킨 성금도 있을것이다.
이런 귀중한 성금을 일부 기관장들이 자기 주머니돈을 쓰듯이 맘껏 생색을 내며 멋대로 써왔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을 넘어 허탈해 하고 있다. 도대체 공무원들의 도덕적 불감증의 밑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 어렵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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