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초에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서 얼마간 머물렀다. 시골의 겨울은 조용하게 마련이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도 적막했다. 새벽이나 해저물때면 산책삼아 엽총을 들고 뒷산에 오르시던 아버지가 추수를 마치고선 무릎 신경줄에 이상이 생겨 출입을 삼가고 계셔서 그 뒤를 따라다닐 일이 없게 된 탓에 적막이 더 깊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슈퍼도 없고, 전화도 끊기고, 영화관도 없고, 커피도 마실 수 없고, 아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보내는 하루는 길어서 가끔 혼자 집을 나와 마을끝까지 걸어다녀보곤 했다.
한번 씩 내려갈 때마다 보게 되는건 늘어나는 빈집 들이다. 처음에는 마을 주변이 비기 시작하더니 차츰 안쪽으로도 빈집이 생겼다. 사람들은 떠나면서 방에 무엇을 남겼는지 대문은 열어 놓고 방문엔 자물쇠를 채워뒀다. 빈집을 기웃거리다가 꽉 잠겨진 자물쇠를 보면 늘 마음이 야릇해진다. 그 야릇함에 이끌려 빈집 마루에 올라가 자물쇠가 채워진 방문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들여다 봤는데 방 구들을 뚫고 올라 온 잡초가 얼지도 않고 시퍼렇다.
집들을 벗어나 도랑을 건너 들로 나섰다가 나는 멍해졌다. 노란 생배추가 2백평 4백평 되는 밭에서 그대로 얼고 있다. 재작년에 돈벌이가 되어서 작년에 또 심었다는 약초들도 시퍼렇게 얼고 있다. 가꿔만 놓고 전혀 거둬들이질 않았다. 가까이 가 보니 속이 꽉 찬 노란 생배추들은 겨울동안 눈이 오면 눈맞고 바람 불면 얼고 따뜻하면 녹다가 그대로 썩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심어 가꿨으나 뽑아본들 손품 값도 안되겠으니 아예 버려 둔 것이리라. 작년엔가도 보리수확기에 내려왔다가 2천여평의 보리논에 누렇게 익은 보리 수확을 포기하고 불을 질러버리는 마을 사람을 봐야했다.『요즘 아이들은 김치가 제일 싫어하는 반찬이라는데 무슨 배추를 저리 많이 심어가지고…』라며 웅얼거려도 앞으로 저밭에 무엇을 심은들 저꼴이 아니랴 싶으니 특별한 대책이 없는한 이제 곧 내가 태어난 곳엔 누구도 살고 있을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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