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규 소모전 악순환… 노사모두 “상처”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일본사회의 관심은 춘투에 집중된다. 그 해의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지만 단순히 어느 회사의 임금이 몇% 오르느냐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춘투자체가 국가적인 임금결정 메커니즘이고 그 결정은 공무원등 다른 분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먼저 각 업종별로 대표격인 선두기업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 수준의 기업들이 이에 따르는 식으로 해서 하청기업에까지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같은 춘투는 국민적 합의로 이제는 관행화된 일본사회의 불문율이다. 임금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격돌을 막자는 효율적인 일본식 시스템이다.
우리도 87년 6·29선언이후 노사분규를 연례행사처럼 겪고 있지만 노사양측의 극한 대립과 공권력 투입이라는 똑같은 전철을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87년 3천7백여건에 달했던 노사분규의 건수는 그후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 92년에는 2백여건으로 떨어졌지만 노사의 극한 대립이나 결과에 대한 양측 모두의 불만은 여전하다. 임금결정에 대해 모두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금결정에 국민적인 합의과정을 거치는 메커니즘이 필요한것은 임금이 갖는 이중적인 성격 때문이다. 임금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중요한 소득원천이지만 기업으로서는 재료비등과 같이 생산비(비용)다. 또 임금은 노동과 대체관계인 기계설비와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릴것이냐를 결정하는 주요한 기준이며 국내구매력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고임금은 원가를 높여 물가상승을 가져와 고임금→고물가→고임금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경기를 위축시킴으로써 실업을 증가시킨다. 반면 임금수준이 낮으면 구매력이 떨어져 내수시장이 위축되고 근로자의 의욕을 저해해 생산성이 낮아지는 저임금→저생산성→저임금의 악순환을 야기하게 된다. 때문에 적정임금수준이 과연 얼마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하지만 임금은 노동생산성 범위내에서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즉 노동생산성과 기업의 지불능력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생계비나 기업의 지불능력은 물론이고 노동생산성을 정확히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누가 계산하고 어떤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주최한 「노동운동의 방향 및 임금기준의 합리성에 관한 토론회」에서도 『합리적인 임금결정기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노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지난해 경총과 노총이 마련한 단일임금협약은 노사양측이 모여 임금결정에 대해 최초로 합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같은 노사의 자발적 움직임이 몇년간 계속되면 우리 나름대로의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임금결정 메커니즘이 관행으로 정립될 수 있다.
우리 제조업의 임금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높으며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증가율을 상회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의 불만은 크다. 이같은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임금결정의 국민적 합의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사 양측의 주장이다.【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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