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문제점설립자 도덕성 공격/탁씨/회유·압력에 20여차례 제소까지/교회 탁명환씨를 살해한 범인이 소속된 대성교회는 탁씨와 10여년간 치열한 「이단」논쟁을 벌여 온 「숙적」이었다.
○처음엔 친밀관계
그러나 원래 대성교회설립자 박윤식목사(66)와 탁씨는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던것으로 알려졌다.80년대초 박목사가 「교주우상론」을 표방,정통교리를 벗어 나면서 탁씨가 「이단」공격을 시작했고, 이 때문에 개인적 관계에도 금이 간것으로 교계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탁씨는 80년부터 자신의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현대종교」를 통해 수십차례박목사의 교리상 이단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탁씨는 피살되기 3주전에도 강원 평창에 있는 모 교회에서 강연을 통해 대성교회측을 성토했다.
탁씨와 박목사의 교리상 갈등은 주로 성경의 구원론과 창조론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탁씨는 박목사가 기성교단과는 달리 성경에서 「말씀」과 「진리」를 구별하고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데 대해 『성경의 사상과 언어를 이원론적으로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규정했다.
또『박목사가 설교녹음테이프와 각종 자료집을 통해 자신이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교계잡지와 신문등을 통해서는 이를 뒤집는 이율배반성을 드러냈다』며 『이같은 표리부동한 성격이 이단임을 보여주는 극명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논쟁거리는 창조론의 입장에서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였다.
탁씨는 『박씨가 성경을 「은유와 비유」 자체로 보고 있으며,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추상화된 상징체계로만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아담은 사람이란 뜻으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이며 아담과 하와가 먹은 생명과일은 하나님 말씀이요 선악과는 마귀의 말』이라는 박목사의 창조론은 성경해석상 많은 오류를 가져 올것이라는 비난이었다.
○공개토론회 제의
이같은 성경해석상의 차이로 탁씨는 83년3월부터 「현대종교」를 통해 10여차례의 공개질의서와 비판기사로 대성교회의 교리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탁씨는 85년 대성교회의 실태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아 갔다가 신도들로 보이는 괴한들에 의해 쇠파이프로 피습당해 두 사람의 관계는 극한적인 대결로 치달았다.
탁씨는 이 사건후 『박목사가 초창기 대성교회를 세울 때 주위에 여자들을 끌고 다녔다』며 박목사의 도덕성까지 공격,신도들의 분노를 촉발한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탁씨의 거듭된 비판으로 30년동안 정통교회로 남아 있던 대성교회는 91년9월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됐다.
이후에도 탁씨는 91년 11월 「현대종교」를 통해 박목사의 「사기 공갈 폭력행위」를 폭로했다. 「박윤식씨는 공개토론에 응하라」라는 기사에서 탁씨는 『박씨가 예장통합측 총회에서 이단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수인을 통해 20여차례 나를 고소하고 음해하고 있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양측의 입장을 밝히자는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탁씨는 박목사에 대해 「장로교의 가면을 쓴 이단자」 「쓰레기 더미위에 핀 독버섯들」 「누가 그위에 재갈을 물릴것인가」등의 과격한 비난을 되풀이해 왔다. 이에 맞서 대성교회측은 끈질기게 탁씨를 회유하는 한편 여러갈래의 유무형적인 압력을 가한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탁씨는 끝내 박목사와 대성교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이에 대성교회측은 전총신대 총회장 김만규목사를 내세워 탁씨를 20여차례 명예훼손등으로 고소했다. 탁씨는 피살당일인 18일 하오에도 김목사가 제기한 민사소송때문에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들렀었다.【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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