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헤드릭교수 저/고통의 삶과 문학적 성공 “재조명” 미국 노예해방운동과 남북전쟁의 기폭제가 됐던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작가 해리트 비처 스토우부인(1811∼1896)의 전기가 옥스퍼드대 출판국에서 나왔다. 스토우가 학창시절을 보낸 하트포드의 신학대 교수인 조안 헤드릭이 쓴 이 책은 스토우의 고통스런 삶과 문학적 성공을 보여준다.
스토우는 열렬한 교회조합주의 목사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스토우는 큰언니 카타린 비처가 세운 하트포드 여학교에서 페미니스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가 21세때 가족과 함께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한것은 그녀의 문학적 기량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는 신시내티의 새로운 생활을 동부의 친지와 옛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거리와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 수시로 편지를 뛰움으로써 서한문체 소설형식을 스스로 터득했다. 클럽활동 중 언어학자 캘빈 엘리스를 만나 결혼한 스토우의 인생은 평탄치는 못했다.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 때문에 남편과 오랜 기간 별거하고 부부가 따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녀가 낳은 일곱명의 자녀들은 어려서 병이나 사고로 죽고 나머지도 모두 후에 알코올중독자나 모르핀중독자가 되어 스토우의 중년 이후를 고통스럽게 했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출간된 1852년은 그의 생애 최고의 해였다. 책이 나온 일주일만에 1만부, 10개월 만에 30만부가 팔려 노예해방운동을 촉발시켰고 그후 4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나갔다.
이 소설은 스토우가 그때까지 주로 써왔던 가정 이야기 중심의 「거실문학」에서 벗어나 사회참여로 방향을 잡게하는 계기가 되지만 실제 정치운동에는 나서지 않았다. 또 이 책을 출간한 후 스토우는 열성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참여권유를 받으나 이를 거부하고 소설 「목사의 구애」 「옛마을 사람들」을 완성하는데 열중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결국 스토우의 뜻대로 노예가 해방되지만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은 흑인작가들의 비판대상이 되기도 했다. 리처드 라이트는 1938년 『흑인노예 톰이 팔려다니다가 착한 백인에 의해 구출되는 내용은 순종만을 부각시키는것』이라고 주장하며 적극적 저항을 촉구하는 「톰아저씨의 아이들」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헤드릭은 『스토우 부인을 존경하는것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욱이 자신의 신념을 구체적으로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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