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이 은행을 이용하기에는 그 문턱이 너무 높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은데 ,혹시 교회의 문턱도 너무 높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특히 사이비종교에 빠져서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잃어버리는 비참한 사람들을 볼 때 그런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강한 종교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로인해 각종교가 번창하고 있는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뜨거운 종교본능이 참된 신앙으로 승화되지 못할 때, 그들이 믿는 종교는 종교로서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오히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세속의 욕망을 정당화하여 이기적인 욕심이 이글거리는 신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교회나 절이 이런 신자들로 가득차면 무거운 짐진자,눈물 흘리는 자,소외된 자들은 교회나 절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다른 유혹에 빠질 위험이 높다. 온 교회와 절에 열렬한 신자들의 기도가 넘치는데, 그들은 물한모금 청하는 목마른이웃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재산과 가정을 잃고 끝내 파멸하고 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종교를 갈망하는 절박한 순간에 바른 종교가 내미는 손을 붙들지 못했다는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손을 붙들고, 사교의 세계에서 위안을 찾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게된다.
지난 18일 그자신이 이단으로 단정했던 한 종파의 신자에 의해 피살된 종교연구가 탁명환씨(56)는 전생애를 사이비종교의 실태를 파헤치는데 바쳤다. 그는 자신을 「성전의 특공대장」이라고 부르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교에 맞서 싸웠다.그는 지난 30여년간 70여차례나 광신자들의 테러위협을 받으면서도 사교에 희생된 사람들을 구해내려는 용감한 보안관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북대 철학과, 장로회 신학대를 졸업하고 목사로 일하다가 친구의 어머니가 사교에 빠져 끝내 자살하는 비극에 충격을 받고「성전특공대」로 나섰다는 그의 신흥 종교연구는 투박한대로 그부문에서 독보적이었다. 그는 30여권의 저서를 낼만큼 방대한 자료를 확보했고, 한국 신흥종교사의 산증인이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교 범죄사건들의 뒤에는 항상 그 범죄를 홀로 추적했던 탁명환이라는 외로운 보안관이 있었다.
그의 생전 업적을 추모하는 많은 종교인들은 그의 죽음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라는것, 종교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제때에 손을 내밀수 있도록 늘 깨어있으라는것, 이것이 그의 말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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