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감시 철저·잘못땐 제재 “선진사회 원동력” 도쿄특파원생활 1년이 가까워 오는 기자에게 19일은 일본사회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사히(조일)신문의 법조출입기자가 여중학생과의 섹스장면을 상대방의 동의없이 비디오촬영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는 사실이 이날 주요 신문에 주먹만한 활자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성적인 면에서 개방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도쿄의 공중전화부스에는 누드미녀들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인쇄한 「애인구락부」의 팸플릿이 즐비하다. 게다가 벚꽃이 만발할 때면 젊은 남녀가 대낮에 공원에서 손수건으로 얼굴만 가린채 부둥켜안고 뒨굴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물론 처녀성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최근 한국에서 자궁암검사를 하다가 처녀막이 손상됐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일본사람들이 들으면 동화 속의 얘기정도로 받아들일만큼 성이 개방된 나라이다.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판인지라 어른이 14세의 어린 여학생과 관계를 가졌다고 문제될것은 없으며 무리한 비디오촬영도 일반시민이 그랬다면 별다른 말썽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공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한 제재가 가해지는 나라라는것을 이번 사건으로 깨닫게 됐다.
일본에선 돈과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잡겠다고 과욕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자민당 집권시절 정관재계가 밀착하여 서로 봐주는 바람에 일본정치가 부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국처럼 돈으로 권력도 사고 명예도 사겠다고 덤비지는 않는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다나카(전중각영) 전총리는 총리시절 소위 「다나카 금맥」이란것이 언론에 폭로됐으며 가네마루(김환신) 전 자민당부총재는 일본정계의 최고실력자로 있을 때 정치헌금으로 사복을 채우다 검찰에 구속돼 정치생명이 끊어졌다. 지난해 대기업들의 정치헌금루트를 수사하던 유능한 검사 한명은 기업간부가 혐의사실을 실토치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다 자신이 구속됐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사법기관 언론이 상호감시에 의한 견제기능을 제대로 하기 때문에 일본이 선진국이 됐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최고 권력자의 부정이 언론에 보도되고 사법기관이 권력자의 구린 부분을 수사하고 검사가 주먹을 남용하다 감옥에 들어가는 그런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제화 세계화라는게 무엇인가. 입법·사법·행정기관이 엄연히 분리돼 있으면서 모든 기관이 최고 실력자의 눈치를 봐가며 일을 적당히 처리하는 현재와 같은 관행이 계속되는한 그같은 구호는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도쿄=이재무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