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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루이스 더플러:한국명 김린(내가본 한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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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루이스 더플러:한국명 김린(내가본 한국 한국인)

입력
199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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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다른나라 백년의 발전… 통일로 새도약 있기를 내가 한국에 처음 도착한 때는 한국이 후진국을 탈피해 이제 갓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하던 무렵인 72년 4월이었다. 당시의 한국은 올림픽을 치른 지금과는 거의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낙후돼 있었다. 외국사람들이 당시 서울에서 알고있던 호텔은 워커힐호텔 반도호텔 조선호텔등 3개뿐이었다.

 현재 「황금알을 낳는 지역」으로 불리는 강남지역은 거의 논과 밭이었고 아파트래야 구반포와 낙원동에 위치한 낙원아파트가 고작이었다.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붐비는 종로번화가 역시 그 때는 쇼윈도를 가진 가게조차 하나 없었다.

 당시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은 현 크기의 반정도 밖에 되지않았지만 아기자기한 연못과 천연색의 금붕어들로 많은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었다. 지금은 공원규모는 커졌지만 연못과 물고기들이 사라져 예전의 정취는 맛볼수 없게돼 안타깝다.

 당시 서울의 길 또한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승용차값이 워낙 비싸 감히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가용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운전사도 함께 고용할 수 있는 거부이거나 고위공직자였다.

 대개의 후진개발국이 그렇듯 길가는 삼륜차와 자전거, 리어카의 긴 행렬로 시끌벅적했다. 가끔 소달구지가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곤 했다.

 당시 화장실은 오늘날 「뒷간」이라 불리는 재래식화장실이었다. 처음엔 위생상 불결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매일 깨끗히 청소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차츰 사라졌다.

 주식인 쌀은 당시 크게 모자라 식당에선 수요일과 토요일에 쌀밥을 팔지 못할 정도였다. 일반 서민들은 쌀보다는 보리를 한 봉지씩 사다가 밥을 짓곤 했다.

 오늘날 한국여성들은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꾸기위해 각양각색의 샴푸를 사용하지만 그 때엔 샴푸가 한가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샴푸로 머리를 감는 사람들보다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는 경우가 더 많았다.

 20년전 서울을 젊은이들에게 얘기하면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20년만에 1백년의 발전을 이룩한 한국인들의 놀라운 저력이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한국속담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세계의 석학들은 다가오는 21세기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 위치한 환태평양국가들이 세계주도국가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1세기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간다면 그 전망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특히 현재 첨예하게 대립된 남북관계가 급진전돼 빠른 시일내에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은 「20년만에 1백년의 발전」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유니버설발레단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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