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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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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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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로댕 미술관의 정원에 있는 조각 「생각하는 사람」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예술가의 혼에 압도 당함인가, 마치 종교행사에라도 참석한듯 경건한 느낌을 받는다. 예술과 철학과 신앙이 하나로 응결된것 같은 심오한 감동으로 떨린다. ◆이 조각의 높이는 보통 서양인의 키와 비슷한 1백86㎝. 처음엔 석고상으로 완성되어 「시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것이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지옥의 문 한가운데서 뭇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시인을 등장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옷을 벗은채 바위에 허리를 걸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어냈다. ◆「생각하는 사람」엔 혼이 있고 그래서 고뇌가 있다. 사고가 없는 삶은 다른 생물과 다를바 없다. 생각이 없으면 고뇌도 없는 법이다. 고뇌 없이는 삶의 가치는 별것 아니다. 삶이란 결국 생각하며 행동하고 행동하며 생각하는 연속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말은 철학의 진리이면서 인생의 깊은 뜻을 함축한것이다.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합리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무슨 까닭인지 요즘은 생각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머리를 써서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골치 아픈 탓일지 모른다. 쉽게 즐겁게만 살아가자면 사고는 부담스럽다. 그러니 고뇌는 고통일뿐 아무 보람이 없는것으로 피해버린다. 삶을 지탱해 주는것은 충동과 감각이 우선한다. 이것들은 향락을 낳지 문화의 가치는 잉태 못한다. ◆우리 사회엔 묘한 현상이 있다. 문화라는 말은 아주 잘 쓰면서 정작 생각하기는 싫어한다. 정치문화 기업문화에서 거리문화에까지, 문화가 범람할듯 하다. 그렇지만 정작 생각하는 문화는 개화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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