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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기설 이후/「돌아온 김영주」에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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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기설 이후/「돌아온 김영주」에 관심 집중

입력
199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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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에 권력 7위 복귀 재분석/「2인자 부상론」 조심스레 제기/당내 입지탄탄… 곳곳 정책결정 혼선노출도 북한의 김정일당비서를 둘러싼 「신변이상설」 「역할축소논」이 꼬리를 물면서 한때 그의 정적이며 북한권력의 2인자였던 김영주부주석에게 조명이 모아지고 있다.

 『김영주 복권의 의미를 과소평가 했었다』

 관계당국과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영주가 지난해 실각후 17년만에 권력일선에 복귀했던 의미를 재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삼촌과 조카사이 이면서 아직도 서로 양립할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물론 가정이지만 김정일에게 문제가 있다면 김일성이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인 김영주에게 국정을 맡길수 밖에 없지않겠는가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2개월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김영주의 복권후 행적도 눈에 뛰지는 않는다. 지난1월10일 주북한 이집트대사를 접견한 것이 그가 부주석으로 활동한 유일한 공개된 사례다.

 김영주는 지난해12월8일 당중앙위전원회의 제6기20차회의에서 정치국위원으로 정식 복권된뒤 같은달 9일부터 사흘간 계속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6차회의에서 국가부주석에 선출, 권력핵심에 돌아왔다.

 같은달 9일 김일성과 김정일이 「공산주의 미풍선구자대회」참석자들을 접견한 자리에 김영주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김영주는 강성산정무원총리,이종옥부주석, 박성철부주석에 이어 호명됨으로써 일단 권력서열 7위에 돌아왔음이 확인됐다.

 행방이 묘연했던 그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에앞선 지난해 7월27일 북한의 전승기념일 40주년 기념행사때 였다. 75년4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5차회의에 나타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당시 북한방송들은 김영주를 전정무원부총리라고만 소개하며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탑」준공식에 김부자와 합류, 참석한뒤 「축원의 노래」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측 당국자들은 김영주의 재출현을 감상적으로 해석했다.김정일이 권력기반을 완전히 갖추고, 쫓겨난뒤 71세의 고령으로 무력해진 삼촌을 다시 품안에 불러들인, 가족재결합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당을 장악,무소불능의 권력을 휘두르며 70년대 남북조절위 위원장을 지냈던 그가 김정일의 휘하에 완전히 굴복해 들어갔다는 해석이다.

 김영주가 부주석으로 복권됐을때도 「집안의 어른」으로 임박한 권력승계의 후견인노릇을 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그만큼 그가 권좌를 떠났던 기간이 길었다. 그러나 그가 김정일과 , 그리고 김성애녀맹위원장(김일성의 처)등「곁가지」까지 끼어든 치열했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후 머물던 주을온천등에는 문안인사를 오는 당간부가 끊이지 않았었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 북한의 당고위간부들은 태반이 김영주가 당조직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키워냈던 인물이라는 것.

 김정일의 위기설이 나도는 지금 김영주가 그의 「후견인」이 아닌 「대리인」으로 부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권력내부에서는 누구도 책임있는 정책결정을 내릴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겪고 있다는 조짐들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우리측으로서는 김정일의 동향과함께 「돌아온 넘버2」김영주의 동향을 크게 주목해야할 때가 온것같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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