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업무 무시… 게으른 「철밥통」길러 중국이 개방되기전 「철반완」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철밥통」이란 뜻을 가진 이 말은 아무리 게으름을 피우고 일을 안해도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으면 정년때까지 아무도 쫓아내는 사람이 없고 다른 동료들과 같은 대우,같은 월급을 받으며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한번 직장을 잡으면 『닳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쇠로 만든 밥통』을 차지한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함께 「우화우불일개양 우다우소일개양 우호우불일개양」(일을 하든 안하든 마찬가지, 일이 많건 적건 마찬가지, 일이 좋건 나쁘건 마찬가지)이란 말도 유행했었다. 일을 많이 하든 않든, 능력이 있건 없건간에 같은 임금, 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직장풍토를 빗댄 말이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도 중국의 「철밥통」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을 하든 않든, 잘하든 못하든 똑같은 기준으로 임금을 받는 연공급체계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로는 88·5%의 국내기업들이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이 개개인의 능력이나 맡고 있는 업무를 무시한채 학교를 어디까지 나와 언제부터 근무하기 시작했느냐는 연공으로 직위와 봉급을 결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는 뒷말없는 객관적 척도가 되고 생활보장을 중시한다는 동양적 가치기준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개인과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장애 요인이다. 업무능력에 대한 임금보상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근로자의 기술·기능개발을 유인할 수 없고 근로자들에게 직장이란 자리만 차고 앉으면 큰 잘못이 없는 한 평생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연공급체계가 갖는 더 큰 문제는 고용구조를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의 자동적인 상승은 경영자에게 불필요한 인력까지 고임금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경영자쪽에서는 이에 대응해 임시직, 파트타임직 근로자를 고용하고 오래 근무한 근로자들을 업무능력과 관계없이 뒷전으로 밀어낸다.
연공급 임금체계는 또 집단화 획일화된 임금협상을 몰고 온다. 획일적인 임금협상은 80년대후반부터 본격화된 대형 분규의 원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잘한 사람이나 못한 사람이나 다 같이 임금을 올려야 하니까 오히려 평소에 놀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는 결과가 될수 밖에 없다.
89년 두달 가까운 분규를 겪었던 금성사는 냉장고 매출 1위의 자리를 분규와 함께 잃어 다시 탈환하는데 5년이 걸렸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는 50년대 중반까지 유지하던 일본내 자동차시장점유율 1위자리를 분규이후 도요타에 내준뒤 지금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들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봐야 빈들빈들 노는 사람보다 임금을 더 받는것도 아니니 일할 맛이 날 까닭이 없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기업은 이익을 못내 임금을 줄이거나 근로자수를 줄여야 한다. 결국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의 폐해는 근로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연공급체계는 경영주나 근로자 모두에게 이득을 주지 못한채 고용불안을 가져오고 기업의 경쟁력만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평생직장 연공급우선의 관행을 지키던 일본이 요즘에는 직능급체계로 전환하고 있고 중국도 철밥통원칙을 버린지 오래다.【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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