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국제부 와이어실은 별난 세상이다. 그곳에서 24시간 토해내는 엄청난 양의 뉴스를 접하면 세계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21세기의 미래선점을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세계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우리는 이 대열에서 낙오하는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곤한다. 왜 그럴까. 선진국엔 기술과 자본으로 뒤지고, 후진국엔 고임금 고지가 고금리로 급속히 제품의 경쟁력을 추월당하고 있는 나라, 이것이 오늘의 우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통 신이 나질 않는다고 푸념들이다. 기업인 장사꾼 직장인 심지어 정부의 고위관리직까지도 같은 푸념들을 늘어놓는다. 이런 가장들을 내조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시달려야 할 주부들은 더욱 신이나지 않을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신나는 사람들은 상도동 가신출신밖에 없을거라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쪽 사람들은 이 정부하에서 한자리씩 다 차지하고 있다. 그걸 대고 뭐라고 할수는 없다. 어차피 대통령중심제하에서 대통령을 만든 공신들이고, 바로 정권의 책임을 질 사람들이니까.
기업하는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홍콩에서 인천까지 원목을 들여와, 서울근처 공장까지 운반했더니 홍콩에서 인천까지의 운송비용보다 하역해서 공장까지의 운송비용이 더들더라는것이다. 이렇게 한심한 물류비용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이런 판에 어떻게 국제경쟁력을 갖추느냐고 그 친구는 핏대를 곤두세웠다.
지금 장터나 백화점엘 가보면 우리의 시장이 얼마나 잠식당했는가를 금세 알수 있다. 우리의 된장찌개를 위해 중국산 우렁이가 팔리고, 네덜란드산 양파가 우리것보다 더 싸다. 언제까지 신토불이를 내세우거나 「우리것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우겨댈수 있을까. 솔직히 이제 역부족이다. 엊그제는 중국에서 만든 50㏄짜리 오토바이가 한국에 수입된다는 외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지난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이후 국제화만이 살길이라고 모두가 외쳤다. 대통령부터 정부의 모든 관계자들, 정치인까지 한목소리가 되어 국제화 세계화의 선도자를 자임했다. 그때의 국제화 바람은 몰아치는 태풍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 국제화 바람은 어느새 하잘것없는 미풍이 돼버렸다. 단적인 예로 국제화 물꼬를 트기위한 정부의 행정개혁은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형국이고, 국제화 구호에 앞장서던 공직자들은 매사에 이른바 복지불동이다. 그럼에도 공직자들의 쓸데없는 권위는 기업인 장사꾼들앞에 여전히 온존해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일의 앞뒤가 꼬였기 때문이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은 요란한 구호를 외치기 앞서 국제화에 대한 의식과 자세변화를 우선했어야 했다. 국민 개개인은 물론 국가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국제적인 감각과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우선됐어야 했던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을 신나게 할수는 없을까. 맹렬하게 국제화의 바람을 일으킬수는 없을까. 있다. 누군가가 국민들을 신나게 부추기면 된다. 국제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각분야에 역동의 신바람을 불어넣어주면 된다. 회사가 망하거나 흥할때 결국 그 책임과 영광은 최고경영인에게 귀착되는것과 같은 이치로, 변화의 길목에서 국가지도자가 가져야할 몫은 실로 크다. 정부 고위공직자들에게 신문사 국제부 와이어실을 한번 와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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