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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의 역사성(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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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의 역사성(1000자 춘추)

입력
199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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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사회엔 일본의 대중문화 수입에 대한 찬·반 양론이 무성하다. 양쪽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주일 대사의 발언중 『국민이 지니고 있는 새로운 쇄국정책을 타파해야 한다』는 말은 역사학자로서 몹시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아직도 우리는 후미진 변방의식 속에 개화론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19세기 서양제국주의에 의한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서세동점의 대세와 그에 편승한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여 우리 선조들은 격심한 진통을 겪었다. 이질적인 세계관과 대포와 군함을 앞세운 제국주의 물결은 민족문화의 위기로 인식되었으므로 끝까지 그것을 지켜내려는 국민적 공감대가 국론으로서의 쇄국정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세계질서에 적극 편입하려던 개화운동은 당시대의 「시무」였지만 그 현실론적 특성 때문에 대상이 미국이든 러시아든 상관없이 끊임없이 변신하며 타협함으로써 결국 친일파로 전락하고 국망에 보조적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사학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하여 개화론을 높이 평가하고 쇄국주의를 낡고 후진 보수반동주의로 낙인찍었다. 개화는 좋은 것, 쇄국은 나쁜 것이라는 1세기전의 도식적인 사고의 틀에 아직도 얽매어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 군사적 제국주의시대가 가고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로 전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전단계 일제의 잔재조차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시대 일본이 선진문화로 동경하고 수입해 가던 우리 전통문화의 정수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철저하게 평가절하되고 말살되었다.

 바야흐로 잃어버린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민족정체성을 바로 세우려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고 있는데 개화론→근대화론→국제화론의 흐름에 편승한 일본의 문화적 공세는 겨우 돋아나는 싹을 노랗게 말려 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민의 쇄국정책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난 자기문화보존의식의 발로이다.<정옥자·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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