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주일 남짓 지나면 김영삼정부가 출범 1주년을 맞는다. 「문민정부」 「신한국」 「신경제」등 수많은 신조어를 창출하며 중단없는 개혁을 내세운 김영삼정부는 과연 어떤 일을 하였는가. 현정권의 지난 1년을 경제면에서 평가해보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 보기로 하자. 외연적 성장의 단계를 지난 한국경제가 지향해야 할 바는 빈부간, 도농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경제구조조정과 병행하여 자생적 성장을 위한 잠재력을 배양하는것이다. 그런데 균형과 성장잠재력의 배양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6공 2기정부는 해놓은것이 별로 없다.
우선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현 정권은 형평이라는 말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 일변도였다. 성장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서 형평문제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평의 기반없는 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했어야 했다. 중소기업이나 중산층의 건실한 발전없이 경제를 이끌어 가려는 시도는 모래 위에 누각을 지으려는 시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장잠재력 배양면에서는 어떤가. 우선 신경제 100일계획은 김영삼대통령의 핵심추종자들 조차도 인정하는 실패작이었다. 경기부양에 눈이 어두워 인위적으로 낮춘 이자율과 방만하게 풀린 돈은 경기부양은 커녕 연말·연초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보다 더 심각한것은 100일계획에 바빠 개혁아이디어(예를 들면 이자율자유화와 금융실명제)의 실천을 수개월 지연시킨것이다. 뉴질랜드의 R·더글러스 전수상도 말했듯이 무릇 개혁은 집권초기에 그리고 광범위하게 하지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WALL STREET JOURNAL, 1/19/90)
100일계획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는가? 비록 출처는 분명치는 않으나 갖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대통령당선을 도운 일부 재벌의 머리에서 나온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이들은 백지나 다름없는 대통령의 경제교과서에 만약 경기부양책을 안쓰면 1993년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어 대통령이 추구하는 개혁은 물론 모든것이 죽도 밥도 안된다고 위협성 조언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김영삼정부는 집권초부터 재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것임에 틀림없다.
금융실명제는 어떤가?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는 금융실명제는 대다수 국민의 축복속에 출발하였다. 그러나 도저히 지키기 힘들 정도로 초강성을 띠고 출발한 실명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퇴색하여 종이호랑이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가명은 차명으로 또 먼사람으로부터의 차명이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차명이 되는 형식적 변화로 끝났다. 정부는 실명제가 부작용없이 정착되어 간다고 큰소리치지만 부작용이 없는것이야말로 실명제가 실명되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수술을 제대로 했다면 환자가 통증을 못느낀다는것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은가. 실명제는 선언적 의미는 있었을지 몰라도 일반대중만 조금 불편하게 만든채 큰 손은 아직도 가면을 쓰고 금융시장을 활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면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급속도로 진행중인 규제완화는 어떤가? 국제화를 「국시」로 내건 정부는 국제화는 곧 탈규제인것처럼 그리고 규제만 풀면 모든 경제문제가 해결될것처럼 「기업, 특히 재벌이 만족할 때까지」규제를 풀 태세다.
무원칙적인 규제완화를 보면서 혹시 이를 통해 부차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경기부양과 국제화에 도움이 될것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도 미국과 대기업들의 로비를 동시에 들어주기 위한 제스처가 아닐까 하는것이다.
현정부의 대기업중심주의는 민자당이 대표적 재벌의 하나인 삼성에 당원교육을 맡겨버리면서 클라이맥스에 달하였다. 정치권도 기업을 배워야 한다는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정당은 정당이 할 고유한 일이 있고 또 정당, 특히 집권당 내에는 유능한 인사도 많을텐데 당원교육을 전적으로 기업에게 맡겨 민자당을 삼성화시키려는것은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이해가 안간다. 또한 정부도 정부 고유의 업무가 있는데 총무처, 내무부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 국립대학의 주요공무원들조차 삼성교육을 받았거나 받을 계획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기업중심주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종사자와 다른 사람들과의 불균형도 심화시킬것이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30여년간 쌓아 올린 민주화업적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위험한것이다. 형평없는 민주주의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구미의 많은 지식층들은 미국의 경기회복과정에서 나타난 저테크놀로지 노동자의 저임화 현상을 보면서(TIME, 94년2월7일) 과연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지탱될 수 있을것인가라는 의구심을 표명하며 형평에 대한 관심과 정책대안수립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김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눈앞의 경기보다는 성장잠재력 배양과 함께 형평성 제고에 눈을 돌릴것을 촉구한다. 그러자면 우선 재벌을 필두로 한 대기업중심주의를 포기할것은 물론 실질적인 개혁조치들을 중단없이 시행해 나가야 한다.【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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