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숲」을 보지 못한 채 좌절하고 만 국가가 적지 않았다. 사고의 폭을 약간 넓히고 자존심을 조금 버렸더라면 나무 대신 숲이 보였을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는 말이다. 작금의 미국과 일본은 이를 알면서도 세계경제를 볼모로 삼는 힘겨루기의 모험에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양국의 무역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정상회담이 실패한 직후 일본은 이제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터놓고 말하는 성숙한」 미·일 관계의 막이 열렸다는 호소카와총리의 말에서 「NO」할 수 있는 강력한 자신의 미래상을 발견하고 있는 반면 미국정부는 16일 일본이 약속을 어겼다며 일련의 무역제재조치를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갈등의 발단은 작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일본은 자동차등의 분야에서 시장을 개방할것을 약속했고 지난번 정상회담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열렸다. 거기서 미국은 약속의 이행상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감시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개방의 추이를 측정해 줄 기준치를 설정하려 했다. 한편 일본은 국가에 의한 무역의 관리를 우려하면서 미국의 제의를 거절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이 냉정을 되찾고 다시 이익의 절충에 나설것을 촉구한다.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절충의 공간이 결코 작지는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사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자기 자신의 과소비에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그래서 보복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임기응변책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한 보복은 대일적자를 축소할 뿐 무역수지 자체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일본 역시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제 세계는 소비억제와 수출증대를 통해 커온 일본을 계속 충족시켜줄 만큼 크지 않고 일본 역시 이전처럼 작지 않다. 일본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을 방관할 만큼 적자국의 인내력이 무한하지는 않은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일본에 불어닥친 장기불황의 일차적 원인이 엔고라는 사실에 주목하면 개방은 결코 일본의 국익에 반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면 미국과 일본은 정당성에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다. 과소비 문화를 버리지 못한 채 제재를 논하는 미국이나 자유무역의 우월성을 역설하면서 개방의 폭을 줄이려는 일본이나 다같이 UR이후의 시대를 지배하는 시장의 원리에 역행한다. 경제대국은 대국다워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더이상 긴축과 개방을 연기한 채 경기조절의 책임을 제3의 약자에게 전가시키려 하지 말고 소국이 따라야 하는 시장의 법칙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나무」만을 보다 좌절하고 마는 사태에 다시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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