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지역에도 서울에 비견할 만큼 유서깊은 수도는 흔치 않다. 우리의 선조가 정주한지 1천여년이 훨씬 지났고, 나라의 도읍으로 6백년을 거치면서 역사의 온갖 풍상을 겪은 곳이 바로 서울이다. 최근 서울시는 정도 6백년을 계기로 하여 국제도시로의 재도약을 위해 장기종합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도시로서 손색없는 하부구조를 완비하고,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비하여 대단위 유통시설을 건립하고, 북경·서울·동경 사이의 3각제휴를 강화한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이에 우리는 이러한 장기종합대책이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에 압도되어 수도 서울의 물리적·경제적 기능강화에 역점을 둠으로써 상대적으로 사회·문화적 구조개선을 경시하고 있다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서울의 국제도시로의 전환은 일개 도시만이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다. 서울은 좋든 싫든 나라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정치 행정 경제 문화 교육 체육 법률등 모든 기능이 이곳에 편중함으로써 국토의 균형발전이 저해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울이 인구과밀로 인해 안고 있는 주택부족, 교통체증, 환경오염, 인간소외등 고질적인 도시문제도 이와 결코 무관치 않다.
한국의 상징으로서 「옛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되는 수도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화사업의 기본목표를 경제효율보다 환경보전에 설정해야 한다. 강남북에 건설될 순환고속도로가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교통유발을 촉진하고, 대기오염을 악화시킬 것은 불문가지다. 한강이 센강 템즈강 포토맥강 보다 크고 아름답지만, 그동안 수도권의 공업생산, 주택개발, 교통확충등 개발논리에 밀려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수도 서울의 참 모습은 외양보다 내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 요체는 생활의 질의 향상에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건설이 주택보급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무주택자의 비율이 전국평균을 상회하는 치부를 가린채 국제도시가 될 수 없다. 주민생활과 여가선용을 위한 편익시설과 문화공간의 확보도 중요하다. 재개발사업도 주거 상업 사무 위락등 여러 부문이 분산됨으로써 다핵적 도시구조를 이루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는 문민정치의 시대에 사람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도시공간의 창출을 위하여 보다 인간 중심적으로 계명된 시정을 기대한다. 제한된 재원을 가지고 개발과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서 시민참여와 합의는 필수적이다.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수도 서울이 병만 얻고 약을 구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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