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문화 해금논쟁… 현실외면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 바꿨으면 어린이 프로를 담당하는 PD가 딸의 노래를 방송하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한국노래가 아닌 일본노래라도 좋단다. 한국의 공영방송에서 일본의 노래는 흘러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것은 뜻밖의 연락이었다. 녹화를 위해 여의도 TV 스튜디오에 갔다. 딸이 노래한 「즐거운 히나 마츠리」는 2월8일 아침 전국에 방송됐다. 시청자들의 항의는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본의 노래나 영화등의 공식방영은 허가돼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일본문화의 유입이 진행중이다. 서점에서는 일본의 패션잡지를 손에 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가라오케에선 유창한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를 만난다. 국내 도처에 일본 위성방송을 수신하려는 대형 패러볼라 안테나가 즐비하다.
예외적 조치이기는 하나 지난해 대전 엑스포에서는 일본 가수의 공연이 허락됐다. 이것을 두고 노골적인 문화침략이라고 규탄하는 목소리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은 한국내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면역이 서서히 생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제 일본 음악이나 영화등의 수입을 검토할 시기」라는 공로명주일대사 의 발언은 일본문화해금에 대한 찬반논쟁을 촉발했다. 정계는 시기상조라고 반박하고 정부는 「단계적으로 개방할 방침」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건전한 것만을 골라 수용하는 조건으로 문화개방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부정일변도였던 한국 매스컴에도 최근들어 해금을 지지하는 논조가 눈에 뜨인다. 공대사의 발언은 이러한 국내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킨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일본인회가 지난해말 한국주재 일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3%가 한국이 일본 영화나 가요곡의 해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국내의 감정을 고려하여 현상태가 좋다는 회답도 12%나 되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문화체육부는 표면적으로 양국간 문화협정 미체결을 일본 노래와 영화수입금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사에 대한 국민감정을 고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의 국민감정을 제쳐놓고 일방적으로 문화개방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뿌리깊게 남아있다. 12%라는 숫자는 이러한 일본인의 미묘한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내에서는 일본문화의 홍수가 일어나 버린다면 한국의 전통문화가 파괴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양국문화의 만남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시각에서 본다면 문제는 그다지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일본문화는 무조건 나쁘다」는 고정관념에 매어있다면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상호이해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일본 tbs방송 서울지국장>일본 tbs방송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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