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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2세 레오날도 김씨/“한국사람은 30년만에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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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인2세 레오날도 김씨/“한국사람은 30년만에 처음”

입력
199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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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김인규특파원 감동의 첫 르포/75세고령에 우리말 술술/48세대 150여명 거주… 멕시코 이민 후예/대부분 혼혈… 김치·고추장 전통 아직간직 『한국사람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한국계 쿠바인 레오날도 김씨(75)는 처음 만나는 한국기자의 어깨를 움켜잡은 손을 한동안 풀지 않았다. 쿠바에서 태어난 이민 2세이면서도 우리말로 고국사람 만난 기쁨을 표현했다.

 한국이름이 「김연규」인 레오날도 김씨는 지금 쿠바에 살고 있는 48세대 1백50여 한인이민 후예의 한사람. 1905년 유카탄반도의 선인장농장 일꾼으로 왔다가 쿠바까지 흘러든 멕시코 이민 1세의 후예이다.

 그의 부모는 1950년에 사망했고 3명씩이던 형과 누나도 모두 세상을 떠나 세번째 부인과 첫 부인에게서 난 딸 메르세데스(41)부부, 손녀 카브레라(17)부부, 손자 프라이군(8)등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부모 어느 한쪽이 멕시코 또는 쿠바인인 동료들 사이에서 「프로한인」(순수 한인)으로 불리는 김씨도 부인은 모두 쿠바인이어서 순수혈통은 자신의 대에서 끊긴 셈이다. 그러나 혼혈인 딸과 손자손녀들은 김치 고추장같은 한국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수 없을만큼 식생활이 한국화돼 있다.

 그는 부모가 쿠바로 재이주하게 된 시기를 1918년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선인장을 거두어 들이는 일이 고달프고 돈벌이가 시원찮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쿠바로 흘러든것이다. 

 당시 멕시코에서 쿠바로 건너 온 한인들은 마탄사시에 모여 살다 인근 카르데나스시와 수도 아바나로 흩어졌다. 김씨는 한인촌의 명맥이 이어지던 50년대까지 한인협회가 있어 추석 설같은 명절에 잔치를 벌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명절풍습도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불과 몇시간의 대화로 잊었던 말이 많이 떠오른듯 김씨는 『이리와 앉읍시다. 마실것이 있는데…』하면서 스스로 신기해했다. 순수 한국인을 만난것은 30년만이라고 했다.

 64년 약 20명의 북한학생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기위해 아바나에 왔다가 마탄사와 카르데나스의 한인들을 찾아 온 일이 있을뿐 그뒤로는 일절 외부 한인들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북한대사관과도 서로 연락이 없다.

 김씨는 카르데나스시 제지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나이가 들어 이 공장 경비원직을 맡고 있다.

 김씨의 친구 호세 이사벨 페씨(72)는 어머니가 멕시코인이다. 그의 아버지 배태관씨 역시 멕시코에 이민왔다가 쿠바로 흘러들어왔다.

 한국이름이 「배용종」이라는 호세 페씨는 카르데나스 지방공산당 창당요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959년 쿠바혁명전부터 선인장농장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들을 규합, 바티스타정부에 대항하는 공산조직을 이끌어 왔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북조선이건 한국이건 다같은 한민족이므로 쿠바에 온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바나시내에 흩어져 살고 있는 8가구의 한인후예들은 외부세계 정보를 더 많이 수용한 탓인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이 올림픽을 치를만큼 국력이 커졌고, 아바나시내에서 구르는 대우·아시아 자동차의 품질이 뛰어나고 일제보다 값싸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한국계 쿠바인중에는 현역 육군중령 환 김홍(42), 퇴역한 공군 전투기조종사 에디베르토 이김씨(50)등 상류층 인물도 꽤 있다고한다.【아바나(쿠바)=김인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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