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 김현형이 이 땅을 떠난지 3년을 넘겼다. 3주기에 그의 문학전집 16권이 완간되었고, 5주기를 맞아 그가 성장하여 문학의 꿈을 키웠던 목포에 그의 자취를 남기는 「김현문학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목포시 당국도 이를 흔쾌히 수락하여 예향 갓바위 부근 향토문화관 앞뜰에다 문학비를 세우기로 결정을 보았다. 지난달 그의 글벗과 후학들이 그 현장을 답사했다.○문화를 모르는 후진성
목포 향토문화관에는 박화성선생의 유품전시관이 있어, 나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선배작가의 체취가 밴 원고·서한·저서, 평소 쓰시던 각종 일용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폐품이 된 작은 물건조차 꼼꼼하게 챙겨둔 선생의 자상한 성품을 느끼며 감탄했다. 그 전시관이 선생의 고향 목포에 자리잡기는 선생의 자녀와 자부가 문인가족을 이루었으니, 그 문학적 유산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갸륵한 정성도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박화성선생의 유품을 둘러보며, 한 개인의 문학적 생애를 넘어서서, 선생이 거쳐온 시대마다 특색있는 문학적 자취까지 살필 수 있었다. 민속학적 자료로서도 귀중한 유품이었고, 후대가 이를 소중히 보관하여 기림이 당연한 의무임을 깨달았다.
작년은 「책의 해」여서 책에 관한 여러 행사가 있었다. 도하 신문들은 「세계문학의 현장순례」라는 이름 아래 국가와 민족의 영예를 빛낸 문학가의 생가와 작품무대를 소개했다. 문학가의 자취가 담긴 그 현장들은 국가나 지방관청에 의해 잘 보존되고, 해외·국내로부터 몰려오는 순례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음을 기록했다.
나 역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문학가들의 생가와 작품현장을 둘러보았다. 런던에서 5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워릭셔의 스트래트퍼드 온 에이븐은 고풍스러운 마을 전체가 셰익스피어를 위한 관광촌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교회도 예전 그대로였다. 5월의 좋은 절기여서 마을은 관광객으로 축제를 이룬 광경이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는 곳곳에 푸슈킨 동상과 기념관이 즐비했다. 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년을 보냈고 죽음을 맞았던 아파트 3층집은 눈가루가 날리는 혹한에도 넘치는 순례객으로 입장의 차례를 한길에서 떨며 기다려야 했다. 청소년들이 단체로 몰려와 방과 복도를 돌며 안내인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내가 물으니 저 흑해 연안에서 기차를 타고 몇날 며칠 걸려 수학여행을 왔다고 알려주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유럽의 중부 고도로 카프카·드보르자크를 낳은 예술의 도시이다. 프라하는 시전체가 불세출의 작가 카프카를 기념하는 관광지로 오인될 만큼 그 숭모정신이 대단했다. 카프카가 더러 들렀다는 뒷골목의 조그만 그의 누님집마저 기념관이 되어 관광객이 끓었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첨단 정보산업시대를 맞아 국제화·개방화를 외치는 경제전략시대에, 21세기는 국가간의 문화산업 교류와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문화의 국제화에 앞서 국민이 자국의 문화를 기리고 사랑하는 정신부터 심어줘야 한다. 문화를 장려하고 그 종사자의 업적을 평가하고, 자국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자취를 후대에 남겨야 한다.
○지금이라도 보존나서야
문학분야를 보더라도 선대 문학가의 생가와 작품현장 보존은 한심할 정도이다. 윤선도·정철·정약용의 유배지, 김영랑·이육사·심훈의 생가와 집필무대 정도가 후손에 의해 보존되고 있으나 풍화에 의해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유실된 경우도 허다하다. 문학적 공적과 도야된 인격으로 존경받은 이들은 겸손했기에, 생전에 자신의 치적을 기릴 유물을 남기겠다고 발심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부 1년 예산의 3%정도밖에 배당받지 못하는 관련부처로서는 그런데 쓸 예산이 없기도 하겠지만, 문화의 몰이해를 당연시해온 군부독재의 관료주의 타성에 오래 젖어온 관리들이 그런 정치한 문제에 관심을 둘리도 없었다.
정부의 예산타령으로 관이 추진할 수 없다면, 기업체가 문화를 통한 이익의 사회환원으로 그 보존에 나설수도 있다. 문화를 사랑한 기업으로 그 이름을 후대에 남긴다는 이점도 있다. 문학작품의 판매로 성공한 출판사가 생존한 원로문학가 중에 사후 그 유품의 보존이 필요한 분은 립도선매하듯 유실되기 전에 확보할 수도 있다. 요컨대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고김현형의 문학비 건립현장과 박화성선생의 유품전시관을 둘러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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