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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형 가정」 많다/아내 경제력 장악… 재산관리 도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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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형 가정」 많다/아내 경제력 장악… 재산관리 도맡아

입력
199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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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가사분담 늘어도 결정권 약화 부부가 함께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는 정시운씨(35·서울 도봉구 도봉동) 집에서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정씨의 아내가 결정한다. 정씨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에서 맴돈다. 정씨 아내는 생활력이 강하고 수단도 좋다. 이웃과 다툴 일이 있어도 직접 나선다. 아이들도 무슨 일이든 엄마 얼굴부터 쳐다본다. 

 요즘 정씨 집과 같은 「여왕형가정」이 적지 않다. 

 고려병원 이시형원장(신경정신과)이 자신의 저서 「크게 멀리 보고 키워야 합니다」에서 정의한 것에 의하면 「여왕형가정」이란 전통적인 「가부장형」이나 신세대의「남녀평등형」과는 달리 집안 대소사의 의사결정권에서 남성이 소외돼 있는 「내주장(내주장)가정」 또는 「여성과주장(과주장)가정」을 말한다. 

 옛 어른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여왕형 가정」의 문제로 여기지 않을 만큼 숫자가 많아졌다.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 대학원 이정순씨의 91년 박사학위 취득 논문에 의하면 서울 거주 주부 3백1명 가운데 남편에게 순종하는 형이 21.5%, 상호존중형이 23.4%였는데 반해 자기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독선형은 30.9%나 됐다.

 여성개발원이 지난해 농촌지역 주부 9백8명을 대상으로 남녀의 중대사결정 참여비율을 조사한 결과 남편 위주라고 응답한 여성이 39.9%였고 부인 위주라고 답한 경우가 28.4%로 나타나 보수적인 농촌에서도「여왕형가정」이 많이 존재함을 보여줬다.

 이같은 「여왕형가정」의 증가는 주부들의 집안경제력 장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아내들의 경제력은 눈에 뛰게 향상됐다. 맞벌이부부의 경우 부인의 수입이 남편 못지않은 예가 많다. 또 직장에 나가지 않는 전업주부도 남편의 월급을 관리하면서 이재력을 발휘해 재산을 크게 늘려간 예도 많다. 그런 까닭에 주택 자동차등 주요 가족의 재산을 아내 이름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기업인 L사의 부장 백모씨(43·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결혼초기 월급을 봉투째 아내에게 맡길 때만해도 집안의 작은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가정경제를 맡긴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따라 아내는 「빠듯한 생활비」를 명분으로 월급봉투를 당연한 자기 몫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 돈을 주식· 계등으로 굴려 집을 한채 장만했다.  남편이 직장일로 바빠 직접 매매를 담당하기 힘들다는 편의상의 이유를 들어 집은 자신의 명의로 샀다.

 이처럼 경제권이 점차 아내에게 넘어가고 여성이 가정내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가정문화도 크게 바뀌게 됐다. 

 KBS1TV가 지난해 4월 특집프로그램 「부부축제」를 제작하면서 남녀 4백여명을 대상으로 남편의 집안일 참여정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가장의 32.5%가 청소와 빨래, 11.8%가 아이보기, 11%가 공과금납부, 7.5%가 설거지를 하고있어 남편들이 맡는 가사부분이 커졌음을 보여줬다.

 「여왕형가정」이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박묵희씨(박묵희신경정신클리닉원장)는 『가정이란 부부간 평등한 관계가 전제돼야 이상적』이라며 『지나친 「가부장형가정」이나 「여왕형가정」 모두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10대후반에 성역할에 대한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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