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고는 시행상 문제” 인식/알게모르게 정착중… 사회전반 큰변화 재무부가 금융실명제 시행과정에서 그동안 쟁점이 돼온 3가지 사안에 대해 정부입장을 정리, 12일 발표한 것은 실명제 전격시행 6개월을 맞는 시점에서 주요 논란들을 일단락지어 잡음의 여지를 없앤뒤 「실명제 뿌리내리기」에만 전념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발표의 골자는 ▲대체입법 논의에 대해 95년 하반기 현재의 긴급명령을 입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차명거래자는 처벌대상이 될 수 없으며 ▲긴급명령상의 과태료를 보다 강한 형벌로 전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재무부는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체입법논의가 최근의 금융사고에 대한 시각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교통법규가 아무리 잘돼 있어도 교통위반은 발생할 수 있듯이 최근의 사고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실명제라는 새로운 제도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시행상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운전자에 대한 교육 홍보 설득이 위반사례를 줄이듯이 지금은 시행에 전력을 기울일 때라고 재무부는 못박고 있다. 재무부는 그러나 대체입법논의와는 별도로 95년에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추진할 때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긴급명령의 법제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긴급명령은 법률적 효력을 지녔지만 전격시행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나온 것인만큼 적합한 시기가 되면 일상적 상황에 맞게 법률화하겠다는 것이다.
차명예금자를 처벌하지 못한다는 입장의 정리도 중요하다. 긴급명령상으로는 실명거래를 어겼을 경우 금융기관직원만 처벌하도록 돼있다. 검찰등 일부에서 이에 대해 왜 거래당사자는 처벌하지 않느냐고 강하게 이의를 제기, 논란을 빚었다. 재무부는 이번에 금융거래가 「사적 자치의 영역」(정부가 간섭할 수없는 영역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했다. 다만 차명예금주에게는 종합과세를 통해 불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제재이다.
실명제를 위반하더라도 금융기관직원이 과태료만 내는 것은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간감독기관의 특별징계기준에 의해 고의적 실명제 위반은 면직처분을 내리는등 추가징계가 있기 때문에 결코 경미한 징계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금융기관직원이 차명을 적극 주선할 경우 고의적 위반에 해당된다.
실명제시행이후 6개월간 금융을 비롯한 경제전반, 나아가 정치 사회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도 지난해말 현재 6백66억원의 가명예금이 실명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2일의 실명전환 마감일 당시의 가명예금이 7백38억원이었으므로 그 사이에 72억원의 가명예금이 원금의 10%인 7억2천만원가량을 과태료로 떼이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양지로 올라왔다. 아직 음지에 남아있는 가명예금 중에서는 증권이 3백68억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6개월간의 굵직한 변화로는 은행보증가계수표등 실명제 금융신상품의 등장, 선불 및 직불카드의 도입결정, 상속세공제액의 대폭 확대등 세제개편, 세금우대저축 가입한도 확대, 비자금문화의 점진적 쇠락, 사채시장의 위축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사채시장은 현장조사결과 건당 수십억원규모의 거액 자금조성은 거의 사라지고 건당 1천만∼2억원가량의 소액거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재무부는 밝혔다. 기업에서는 비자금조성이 어려워지자 유상증자시 대주주의 증자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 증자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과거에는 대주주가 자기지분의 증자자금을 비자금으로 충당했는데 이제는 그게 뜻대로 안되는 것이다. 또 유통업에서는 무자료거래의 위축으로 신종 편의점과 파격 할인매점등 신업태가 등장하고 정치권에서도 정치인들의 개인후원회 활동강화와 정당조직의 축소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들이 세세하게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실명제가 가져온 이러한 변화의 실제내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국회노동위의 「돈봉투사건」이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엄청난 거액이 오갔는지, 아니면 실명제실시로 인해 종전과 달리 추적을 피하기 위한 현찰소액이 전달됐는지가 실명제변화의 성격을 판가름할만 하기 때문이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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