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휴지기 부담없는 모임 “더 바쁘다” 청계산의 이른 일요일 새벽. 산중턱의 약수터에 줄을 선 등산객 사이에 낯익은「백두」의 정치인이 눈에 뛰었다. 바로 김덕롱의원이다. 그를 알아본 산행객들이 모여들고 덕담과 웃음이 오갔다. 『건강은 산에 있다』『10년은 젊어보인다』는등. 같이 사진을 찍자는 등산객과 어울리는동안 약수터는 장터처럼 화기로 가득해 졌다.
정무장관에서 물러난이후 김의원의 하루는 관악산이나 청계산 우면산에서 시작, 평범한 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직자회의나 고위당정회의 일정도 이제는 그의 수첩에 적혀있지않다. 정세분석자료나 보고서에 파묻혀있던 모습도 더이상 볼수없다. 주변에서는『여유가 느껴질 정도』라고 그의 변모를 전한다.
그렇다고 결코 한가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한다. 정무장관시절 통 연락이 없던 친구, 야당시절의 동지, 동료의원들이『요새는 별 일 없지. 식사나 하자』고 청해오면 거절할수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찬 오찬 만찬의 사적인 일정이 빼곡히 차있고 어떤때 저녁에는 식사약속만 2∼3건이 겹쳐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부담없는 모임들이다.
그 어디에도 실세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의도적으로 탈색과 변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물어보던『왜 물러났나』『언제 복귀하는가』등의 정치적 질문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마치 정치의 중심권에서 뚝 떨어진 행보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그간 구설수에 오르내렸던「주변조직」들도 정리했다. 서초동 신원빌딩의「2천년대 시민모임」 「 김덕롱정책연구실」등의 사무실을 폐쇄했고 지구당의 인원도 줄였다. 김의원측은 폐쇄이유를 심기일전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했지만, 그 저변에는 음해성 소문으로부터 벗어나 자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같다. 김의원의 비서진은『14대 선거때 서초지역외의 지인들이 선거구내에 사는 친지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시민모임은 그들을 한틀로 묶은 지역구 차원의 모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의원은『원인제공도 내 책임』이라며 축소지향의 정치를 선택했다.
김의원 자신도 심기일전하는듯 하다. 공무에 묶여있지않아도 되는만큼 짬짬이 생기는 시간을 자기충전에 쏟고있다. 그의 차안에는 과거 정무장관시절 수북이 쌓여있던 각종 보고서나 서류대신 논문과 책이 가득 들어있다. 주로 미래학서적 경제저널 환경논문등이 그의 탐독대상이다. 소로의「헤드 투 헤드(HEAD TO HEAD)」, 드러커의「자본주의이후 사회」등이 최근 읽은 것인데 시간만 나면 집에서나 차에서 쉴새없이 읽는다는게 주변의 귀띔이다.
김의원이 스스로 만나고싶어 찾아나서는 사람도 주로 미래학자 환경학자이고 이들과 함께 우루과이라운드협상만큼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것으로 보이는 그린라운드에 대한 토론을 즐겨하고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현재의 김의원은 실세라는 표현에 어울리지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극성스런 지역구의원이고 또 어떤때는 교수나 대학원생처럼 느껴진다』고 다소 과장을 섞어 묘사할 정도다.
실제 김의원도 『서울시장 출마설이 있더라』는 식의 정치적 물음에는 『고려하지않고있다』고 짧게 답하고는 입을 다문다.
그러나 지방자치제의 장래,개혁정치,국가경쟁력등 원론적인 문제에는 예의 논리적 주장을 쏟아낸다. 마치 무엇인가를 정리하려고 침묵하며 쉴새없이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그가「휴지기」에 무엇을 다듬고 지향해 어떻게 변신할지 궁금하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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