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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에너지(장명수칼럼: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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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에너지(장명수칼럼:1642)

입력
1994.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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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연휴를 앞둔 지난 8일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젊은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은 피크닉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즐겁게 배낭에 물건을 챙겨넣고 있었다. 누나부부, 형부부, 조카들 몇명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정읍까지 내려갈 예정이라는 그들은 10시간정도 차에서 고생할 작정을 하고, 그동안 먹을 과일·빵·김밥·닭튀김·사발면·마실것등을 사고 있었다. 『지난 추석 때는 8시간 걸렸는데, 오늘은 눈까지 오니 더 걸릴것 같네요. 밤에 뉴스를 들으면서 덜 밀리는 시간에 출발해야지요. 고생요? 명절재미로 생각해야지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못가지요』

 TV가 시시각각 전해주는 전국의 고속도로 상황을 보면 안방에 앉아서도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픈데, 막상 고속도로에 갇혀있는 사람들중엔 그 고생을 「명절재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명절에 고향에 안간다고 무슨 탈이나는것도 아닌데, 「귀성길 고생길」을 마다하지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걸 보면, 고생 속에서도 어떤 재미가 있는것이 분명하다.

 명절의 고속도로에 밀려있는 어마어마한 차량행렬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의식속에 경제번영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남기고 있다. 나도 언젠가 내 차를 몰고 저 어마어마한 행렬에 뛰어들겠다고 다짐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귀성전쟁은 신나는 도전이다.

 TV뉴스를 보면서 『고향이 뭐길래 저 고생을 할까』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뜨끈뜨끈한 삶의 기운이 명절의 고속도로에 가득차 있다. 무슨 고생을 치르고라도 고향에 가겠다는 집념은 땀흘려 이룩한 번영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절대로 그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이기도 하다.

 이번 구정에도 2천6백만명이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이 벌어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이 걸렸다는 교통전쟁은 알고보면 명절기분의 연장이다. 사람들은 차가 밀리면 먹고 마시고, 잠자다가 뒤차의 경적에 놀라 다시 차를 몰기도 한다. 차들은 어깨를 비비며, 땀냄새를 맡으며 함께 간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마침내 고향에 도착한다. 전국의 넓고 좁은 도로에서 밤새 벌어졌던 그 요란한 노상축제가 없었다면, 고향이 고향만으로, 명절이 명절만으로, 가득찰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명절마다 몸살을 앓는 고속도로를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전국의 도로에 가득차 있는것은 고향에 가고자하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 길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뜨겁게 콸콸 흐르는 그 에너지가 고른 숨결을 찾을 때까지, 우리는 귀성전쟁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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