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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사람들에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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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사람들에게(사설)

입력
1994.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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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설날 연휴를 맞아 또 2천6백만명의 인구가 대이동을 한다. 추석 때와 함께 한 해에 두번씩 우리의 전국토가 몸살을 앓는다. 이제는 이것이 연례적인 새 「민속」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이 귀성의 대소동이 있을 때마다 우리 국민들의 유별난 사향심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귀향이란 무엇인가.

 산업사회가 발전할수록 유교문화에 젖은 우리에게는 농경사회에 대한 잠재적인 그리움이 있다. 대회귀 현상은 생활의 여유와 함께 도로가 발달하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더욱 심해져간다. 소외되고 고독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 있으므로 덜 외롭다. 고향은 위안이다. 그리고 고향 생각은 생활의 한 동력이 된다. 어릴 때 자란 땅의 지기가 힘의 원천이다. 이향인은 늘 고향과의 교감속에 산다. 그러다가 명절 때마다 귀향하는 것은 고향이란 존재의 재확인을 위해서다. 타향에서 탈진한 힘을 거기 가서 재생시키고 싶어서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길에서 내버리는 시간의 낭비가 국력의 소모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전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국민의 대혼합 작용이다. 온나라를 섞는 일이다. 도촌간과 대소도시간의 대교류가 이루어진다. 큰 도시의 문물과 정보가 시골로 쏟아져 들어간다. 반대로 시골의 실상과 민심을 도시로 가지고 나온다. 토산물과 함께 잃어버릴뻔한 옛 풍습과 예절도 묻어온다. 이 교류로 전국토가 차츰차츰 평준화된다. 생활환경은 비록 달라도 생활양식이 비슷해진다. 전국민의 사고방식과 인식이 균질화된다. 나라의 평준화는 될수록 좋은 것이다.

 이번 설의 귀향은 딴 해와 또 다르다. 농촌에 돌아가 보면 거기 우루과이라운드로 더욱 주름진 노부모와 일가 친척들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그 시름을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실정을 직접 보고 듣고 하여 농촌을 살릴 길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각해볼 좋은 기회다. 도시에서는 그저 막연하게만 느꼈던 우리 고향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향에 간다.

 그렇잖아도 해마다 40만명씩이 농촌을 떠난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돌아가 봤자 아무도 없이 텅 빈 고향이 되어버릴 날이 올는지 모른다. 모두가 멀쩡한 실향민이 되면 그 때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 해마다 줄지어 돌아가자면 고향을 살려놓아야 한다. 고향사람들을 거기 붙들어 두어야 한다. 고향은 고향사람들이 지켜주므로 고향이다. 이들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고향을 못떠나게 설득하고 도와줄 길을 살펴야할 것이다. 고향은 그 땅을 지키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떠난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고향이 없어지면 명절 때마다 수천만명의 허전한 마음들이 어느 하늘 밑을 헤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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