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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만 잡는 「실명 그물」/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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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만 잡는 「실명 그물」/이성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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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실명제의 신경계통이 고장을 일으킨것 같다. 대뇌(금융당국)에서는 일사불란한 명령(실명제준수)을 내려도 말초신경(금융기관창구·거래자)은 명령내용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장영자씨 거액어음사기사건으로 실체를 드러낸 「구멍뚫린 실명제그물」은 자동차보험 돈봉투사건으로 그 허술함이 다시한번 확인됐다. 공신력있는 시중은행지점장이 차명계좌개설을 앞장서 하고 불법인출을 묵인하는가 하면 자보는 운전자들의 안전·생명비용으로 비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돈을 돌리려 했다. 제도시행 반년이 지난 지금도 실명제가 겨냥했던 금융기관이나 대기업들의 구태는 달라진게 없다.

 변한것이 있다면 서민들의 금융기관창구이용에 불편만 커졌다는 점이다. 사실 국민들은 실명제만 실시되면 「돈봉투」 「검은돈」 「비자금」등 우리나라 지하경제를 지탱해온 뿌리깊은 악성거래관행들이 완전제거될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차명계좌의 개념조차 몰랐던 대다수 서민들은 『실명제는 참된 경제질서수립을 위한 국민적 개혁이다. 경제정의실현을 위해 잠시만 불편을 참아달라』는 정부의 호소를 받아들였던것이다. 

 그러나 이젠 큰고기는 다빠져 나가고 피라미만 걸리는 실명제그물을 두고 「서민들만 번거로운 한국형실명제」란 말이 나오는것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심지어 반실명행위적발을 담당하는 검찰 은행감독원등 관계자들조차 『긴급명령상의 예금자비밀보호원칙때문에 조사에 어려움만 따른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실명제때문에 괴로워야할 사람들은 잘도 지내고 있다.

 큰사건이 나면 당국은 으레 「엄중문책」의 수사를 늘어 놓는다. 금융기관장들을 불러모아 「일벌백계」를 외치며 단체기합도 주고 재벌기업오너라도 범법행위가 적발되면 수갑을 채운다. 문민정부의 달라진 모습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식의 강도높은 처벌과 문책만으로 법과 제도의 영을 세울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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