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날리며 이륙… 44일 고행 추억으로/악천후로 빈슨매시프 등정못해 아쉬움/가족·동료재회 설렘속 다음탐험 구상도 1월17일. 아침나절이 다 가도록 앤은 아무 연락이 없다. 등반에 필요한 짐은다 꾸려 놓았으나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어 지루함속에 또 하루가 갔다.
1월18일. 오늘도 바람이 거세다. 일부러 늦게 일어나 식당에 가서 뉴질랜드, 알래스카에서 온 등반대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책도 보았으나 영 시간이 가지 않는다. 저녁때 온 앤은 날씨 때문에 빈슨 매시프등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원들 모두 풀이 죽었다. 왜 이렇게 날씨가 나쁠까.
1월19일. 밤새 뜬눈으로 지샜다. 앤이 『오늘 허큘리스기가 푼타 아레나스에서 올텐데 이 비행기로 나가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하오가 되자 비행기가 오다가 악천후로 회항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식사는 만년빙을 섞은 별식냉면.
1월21일. 다행히 날씨가 좋아진 것같다. 늦잠을 자고 서둘러 식사준비를 하는데 앤이 오늘 비행기가 도착하니 하오 2시까지 짐을 꾸리라고 한다. 비행기는 하오 2시30분께 도착했다. 다시 바람이 강해져 걱정했으나 다행히 하오 4시30분에 무사히 이륙했다.
설화(설화)를 일으키며 빙원활주로를 이륙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한다. 언제 이곳에 다시 와보나. 모두들 빈슨 매시프 등정을 못한게 아쉬운 표정이다. 짐이 넘쳐 다음에 와서 찾기로 하고 베이스 캠프에 더플백 2개와 매트리스 19개를 맡겼지만 진짜 기약없는 이별이다. 하얀 구름과 빙원을 내려다보며 악몽같던 44일간을 되돌아본다. 비행기로는 이렇게 쉽게 가는 길인데…. 그 힘들던 고생의 기억은 어슴푸레하고 먼 길을 하루아침에 쉽게 간 것같기도 하다. 30개의 좌석에는 노인들도 보인다. 모두들 상념에 잠긴 표정이다. 정확히 6시간 만인 하오 10시30분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장재구한국일보명예회장님이 활주로를 달려와 껴안고 축하해준다. 『반갑습니다. 건강은 어때요』 『덕분에 무사히 성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나에게 언제나 힘을 주시는 분. 남미의 끝까지 달려오시다니, 대단한 분이시다.
호텔에 짐을 푼뒤 유일한 교민가족인 곽일영할아버지 댁에서 갈비탕을 먹었다. 이곳을 떠날 때 도와주었던 곽할아버지는 우리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한달 보름만에 샤워. 때가 뭉텅이로 밀린다. 위스키를 한잔하고 곯아 떨어졌다.
1월23일. 곽할아버지댁에서 갈비와 연어를 맛있게 먹었다. 상오에는 2시간 거리인 남미 최남단에 가보았다. 펭귄이 귀엽게 뛰놀고 있었다. 상가에 나가 선물코너를 돌아보았으나 살만한 게 없어 양말과 팬티만 샀다.
1월24일. 해양연구소 원정대원 19명이 배를 타고 왔다. 이들의 초청으로 중국음식점에서 함께 식사했다. 전에 뵌 적이 있는 장순근박사(48·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센터부장)와 반갑게 해후했다. 이들도 내일 서울로 철수한다고 한다.
1월25일. 어제 너무 과음한 탓인지 오전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오늘 산티아고로 철수한다. 대원들 모두 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다. 예정대로 하오 4시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의 땀과 꿈이 어린 남극대륙을 뒤로 한채. 우리를 거부했던 그놈의 빈슨 매시프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산티아고에서 우리는 대한항공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서울로 직행하게 된다. 이제 돌아가야지. 기다리는 가족과 동료들 곁으로. 그리운 얼굴, 고마운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빙원에서의 고생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런데 왜 이럴까. 머릿속에서는 다음 탐험에 관한 계획들이 샘처럼 솟아난다. 운명처럼 또 떠날 꿈을 꾸고 있는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