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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 저쪽에는(장명수 칼럼: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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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 저쪽에는(장명수 칼럼:1641)

입력
1994.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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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를 전후하여 겪게되는 심신의 변화중 가장 충격적인것은 건망증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건망증이 심해질 때 자신이 치매에 걸린것이 아닐까 남몰래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건망증에 대해 농담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얼마전 50대 전후의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종 건망증 사례들을 털어놓으면서 폭소를 터트렸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하루는 아파트 계단에서 내가 지금 올라가고 있는지, 내려가고 있는지 생각이 안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3층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아침 냉장고에 달걀이 하나 남은걸 보자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나는 그때 가게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어요』

 『내 친구의 이야기인데, 아들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배고프다고 야단을 하더래요. 찬밥이 조금 있어서 아이가 세수하는 동안 나물을 넣고 맛있게 비볐는데, 그만 깜빡잊고 자기가 먹어버렸대요. 아들 애가 어찌나 화를 내는지 빨리 밥을 짓느라고 혼났다지 뭐예요』

 『내 친구는 얼굴에 바르는 비타민E 오일을 먹었대요. 얼굴에 바르려고 한알 꺼내들고 다른 일을 하면서 이걸 먹으면 안된다 생각까지 했는데, 얼마후 찾으니까 없어졌더래요. 걱정이 되어 의사에게 전화를 하고 야단을 했대요』

 『나는 매일 먹는 약을 일주일분씩 덜어놓고 매일 헤아려 본다니까요. 먹어야지 생각하다가 안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두번 먹기도 하니 불안하거든요』

 『이동전화기가 안보여서 아이들을 야단치며 일주일을 찾았는데, 냉장고 안에서 나왔어요. 아무래도 내가 한짓 같아서 말도 못했지요』

 사람들은 서로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자신의 증세가 심각한것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다. 

 산너머 저쪽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듯이 우리는 나이들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성장이 신비한 경험이듯 노화의 경험도 때로는 신비롭다.

 이러다가 바보가 되는것이 아닌가 걱정할만큼 날로 퇴화되던 기억력은 어느날 퇴화를 멈추고, 상승커브로 돌아서기도 한다. 늙어가고 있다는 적막감이 어느날 황혼처럼 찬란한 충만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끓어오르던 분노가 어느덧 고요하게 가라앉았음을 발견하는 때도 있다.

 설날이 오면 누구나 나이를 한살 더 먹지만, 그 한살의 내용은 저마다 다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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