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증시집중·경공업은 불황/주가·소비까지 덩달아 양극화/환율도 비정상절상… “「구3저」전철 우려” 국내경기가 「이상기류」에 휘말려 들고 있다. 겉으로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과열조짐까지 나타나고 있으나 속을 들여다 보면 결코 경시해서는 안될 「블랙홀」들이 산재해 있다.
거시지표상으로는 국내경제가 오랜만에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와 회복국면에 들어선게 분명하다. 경제기획원등 정부당국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5.2∼5.3%에서 올해는 7%수준에 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와 수출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윤청와대경제수석은 최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기과열을 경계해야 한다』고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노심초사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연구기관중 가장 높은 성장전망치(7%)를 내놓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부분석결과 실제성장률이 7%를 넘어설것으로 보고 이 전망치를 상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점점 표면화되고 있는 「이상기류」는 불안감을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
첫째는 은행 단자등 기관투자가들의 무분별한 머니게임이다. 경기회복을 촉진시키기 위해 푼 돈이 실물부문으로 흘러가지 않고 주식시장에 집중돼 증시가 폭발하고 있다. 재무장관이 은행장들을 모아 놓고 『주식투자를 자제해달라』고 주문해햐 할 지경이다.
둘째는 경기회복의 양극화현상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박우규박사(KDI연구위원)는 『지금은 중화학공업의 경기회복이지 전체경기의 회복이 아니다』라며 『경공업은 아직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생산면에서 중화학공업은 지난해 1·4분기(4.7%)이후 4·4분기(13.6%)까지 높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반면에 경공업은 계속 감소상태다. 이런 과정에서 건설업이 이상비대해지고 있다. 건설업의 성장률(한은추정)은 지난해 1·4분기 마이너스 2.3%였으나 4·4분기에는 14.5%로 껑충 뛰어 진폭이 16.8%포인트에 이르고 있다.
대신 제조업의 성장률은 1·4분기 1.4%에서 4·4분기 9.0%로 7.6%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덩달아 증시에서도 주가가 양극화되고 있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은 물가가 올라 주머니걱정을 하고 있는데 부유층의 과소비는 심화되고 있다. 재래시장은 죽을 쑤고 있는데 백화점은 발디딜 틈이 없다. 고급승용차 고급양주 고급과일등이 불티나듯 팔리고 있다.
셋째는 수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율의 이상절상(환율하락)이다. 지난 1월 무역수지적자가 약15억달러(통관기준)에 달한데도 불구하고 원화절상이 지속되고 있다. 환율이 절상되면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다.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은 지난달 10일 8백13원40전까지 올라갔으나 7일에는 8백7원60전으로 떨어졌다. 환율이 무역거래흐름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것.
증시호황으로 주식투자용 외화자금이 많이 들어온 탓이다. 자본시장개방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었던 점이 현실화되고 있다. 주식투자자금이 단기차익만 따먹고 빠져나갈 경우 주식시장과 실물시장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 한 당국자는 『경기가 정점(꼭대기)부근에 왔을때 나타나야 할 현상들이 경기회복 초기에 나타나고 있어 큰 문제』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경기회복세는 오래가지 못할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의 양극화현상은 산업구조조정 주가내실화등의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경제가 산업구조조정과정을 제대로 거치면서 경기가 과열국면으로 치닫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술수준을 향상시켜 가며 설비투자를 늘리는게 아니라 당장의 「신3저」호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재의 기술수준은 그대로 두고 설비를 확장하는 추세』라며 『「구3저」호황후의 구조조정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경제구조의 왜곡이 심화되어 국내시장이 본격개방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경기가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 못 한채 얼마가지 않아 다시 주저앉아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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